“한국이 개성공단 고집하면 FTA협상 좌초”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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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AFL-CIO의 위원장 집무실에서 만난 존 스위니 위원장. 백악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1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AFL-CIO의 위원장 집무실에서 만난 존 스위니 위원장. 백악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존 스위니1995년 AFL-CIO 사상 최초 경선을 통해 위원장에 당선된 이래 네 번 연속 당선됐다. 1960년 여성의류 노조 조사원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한 그는 서비스노동자노조 위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조합원을 62만 명에서 110만 명으로 늘리는 지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시어 리 정책국장은 9년 전 AFL-CIO에 합류한 국제경제 전문가다.
존 스위니
1995년 AFL-CIO 사상 최초 경선을 통해 위원장에 당선된 이래 네 번 연속 당선됐다. 1960년 여성의류 노조 조사원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한 그는 서비스노동자노조 위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조합원을 62만 명에서 110만 명으로 늘리는 지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시어 리 정책국장은 9년 전 AFL-CIO에 합류한 국제경제 전문가다.
《14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두 정상은 한목소리로 “한미 FTA가 양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협상에 힘을 실어줄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한미 FTA 반대 목소리는 심상치 않다. 미국 최대 노동조합 상급단체인 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회의(AFL-CIO)는 지난주 시애틀 제3차 협상 때 한국 노동단체들과 함께 반대 시위를 벌였다. 11년째 AFL-CIO를 이끌고 있는 존 스위니(72) 위원장과 12일 단독 회견을 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워싱턴 시내에 있는 AFL-CIO 본부 건물의 위원장 집무실에 들어서자 백악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백악관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라고 인사를 건네자 스위니 위원장은 “조지 W 부시 정부는 역대 행정부 가운데 가장 반(反)노동자적”이라며 싱긋 웃었다. 이날 회견엔 시어 리 정책국장이 배석해 위원장의 답변에 덧붙여 AFL-CIO의 입장을 상세히 보충 설명했다. 》

―한국과 미국, 양쪽의 노동단체들이 모두 FTA가 시행되면 일자리를 뺏기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소 모순되는 일 아닌가.

“멕시코의 예를 보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시행되자 일자리와 공장이 미국에서 멕시코로 옮겨갔다. 단기적으론 멕시코의 노동상황이 약간 향상됐다. 외국자본 투자가 급증하고 국경 인근 지역에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늘었다. 그러나 농업 부문에서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전체 멕시코 노동시장은 안 좋게 변한 것이다. 거대 기업들도 나중엔 중국으로 가버렸다. 결국 양국 노동자 모두 손해를 봤다. 미국에선 전체 경제의 성장에 따라 일자리가 늘었지만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는 서비스 부문에 집중됐다. 제조업의 일자리는 밖으로 나갔다.”

―한국과 멕시코 상황을 비교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물론이다. 한국은 강력한 산업경쟁자다. 그게 우리가 한미 FTA를 걱정하는 한 이유다. 한국은 공격적이고 경쟁력 있는 산업 선진국이다. 미국 정부는 FTA가 체결되면 더 많은 차와 가전제품을 한국에 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 정부가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신뢰할 수 없다. 양국 노동자의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양국간 협상에서 더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리 국장)

―미국 입장에선 한미 FTA가 체결되면 어느 부문이 가장 취약하다고 보는가.

“자동차 강철 섬유 소비자가전이 대표적인 취약 부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패배자가 된다고 해서 그 부문에서 한국이 승자가 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미국이 농업에선 약간 이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농업은 노동집약적이 아니다. 제조업에서 많은 일자리를 잃고 농업에서 조금 얻는 건 문제다.”(리 국장)

―한미 FTA 자체를 반대하는 건가.

“우리는 협상 과정에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때까지 협상의 유예를 요구한다. FTA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세계화와 교역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다.”

―북한 개성공단 생산품을 FTA 품목에 포함시키는 데 대해 AFL-CIO도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개성공단 문제는 한국 정부엔 대북 화해정책의 상징물 같은 사안이다. 양보할 여지가 있는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고집한다면 협상을 좌초시킬 수 있는 사안(deal breaker)이다. 설령 부시 행정부가 받아들인다 해도 미 의회에서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개성공단의 돈이 대량살상무기(WMD) 자금으로 전용될 것을 우려해서 그런다 해도 AFL-CIO는 왜 그렇게 강경한가.

“개성에 있는 노동자들에겐 독립 노조 결성과 단체협상, 국제노동기구(ILO)가 보장하는 자유가 없다. 그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매우 억압되고 위협을 받으며 저임금을 받는다. 임금이 북한 정부에 지급되는 것도 우리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민주사회와 자유노동시장에서 정부는 노동자를 소유하지 못한다. 한국 기업이 그런 상황을 용인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에겐 한국 기업이 기본적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저임금 북한 노동자의 노동력을 세계 경제에서 경쟁하는 방법으로 이용하는 것이 비양심적인 일로 비친다.”

―한국 기업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착취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문제의 초점은 작업환경이 나쁘고 더러운지가 아니다. 초점은 단결권이 없다는 점이다. 단결권은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이며 국제적 컨센서스다. 개성공단의 상황은 분명히 매우 억압적인 것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지금 인정하는 것보다 더 책임이 있다.”

―노동운동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미국에서 노동운동에는 위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 수많은 도전이 있다. 정부는 반(反)노조적이고 잘못된 교역정책 때문에 지난 수년간 대부분 제조업에서 300만 개의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졌다. 정부가 만든 약간의 새로운 일자리들은 파트타임, 저임금 일자리뿐이다. 이런 도전 속에서 노동운동은 새로운 노동자들을 공격적으로 조직화해야 한다. 우리가 매년 수십만 명의 노동자를 조직화하지만 더 많은 일자리가 없어진다. 이런 도전들이 들이닥친다 해서 다른 누구를 탓하면 안 된다. 우리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 국제적인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이제는 모든 게 세계 단위로 펼쳐진다.”

―한국에선 일부 노조가 불법·폭력적 행동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사회마다 문화가 달라 행동양식을 비교하거나 충고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도 노조 지도자들은 시위를 벌이고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인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볼 때 진정한 운동은 법과 제도를 어떻게 바꿔 나갈지에 맞춰져야 한다. 의회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의지가 있는 의원을 뽑아야 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 AFL-CIO는 1955년 통합… 조합원 900만명

:AFL-CIO: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nd Congress of the Industrial Organization’(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회의)의 약자다. 미국의 양대 전국 노동조합 조직인 AFL과 CIO가 1955년 합쳐 세계 최대의 노동조합 조직으로 탄생했다. 현재 53개 전국 단위노조가 가입해 있다. 조합원이 1300만 명에 달했으나 지난해 식품노조 등 3개 거대 조직이 탈퇴해 900만 명으로 줄었다. 연간 예산은 9000만 달러가량. 2005년 기준으로 미국의 16세 이상 피고용자 1억2588만 명 가운데 노조 조합원은 1568만 명으로 조직률은 12.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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