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만km 뛴 차가 ‘8만km 주행’ 둔갑

  • 입력 2006년 9월 1일 02시 59분


코멘트
배기구(점선 안)가 차체 옆으로 나와 국내 등록이 불가능한 벤츠 맥라렌 SLR.
배기구(점선 안)가 차체 옆으로 나와 국내 등록이 불가능한 벤츠 맥라렌 SLR.
《이모(42·의사·부산 해운대구) 씨는 1년여 전 중고로 수입된 1999년식 BMW 750iL을 개인에게서 370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구입 당시 주행거리는 8만 km. 그러나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기반이 고장 나 서비스센터에 들어가서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주행거리 표시계가 17만 km로 바뀐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BMW서비스센터 측에서는 “주행거리가 조작된 계기반을 빼내고 새것으로 교체하자 차량 내부 컴퓨터에 기록된 진짜 주행거리 데이터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로 수입된 외제차가 불법의 온상이 되고 있다.

주행거리와 사고 여부 조작은 물론 정상적으로는 국내 인증기준(배기·소음·안전)을 통과할 수 없는 차량을 불법 개조해 인증을 받는 사례도 많다.

○ 주행거리와 사고 여부 조작

주행거리가 조작된 BMW 750iL 중고차를 구입했던 이 씨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경찰은 서면조사만 하다가 수사를 종료시켰다.

그 뒤에도 문제의 차는 걸핏하면 고장을 일으켜 지난 1년간 차를 고치는 데 3000만 원이 넘게 들었다.

박모(51·서울 서초구) 씨는 3월경 중고로 수입된 벤츠 S클래스를 ‘무사고’라는 말만 믿고 6000만 원에 구입했는데 보닛과 펜더가 사고로 교체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중고차 매매상에 가서 항의해 500만 원을 돌려받았지만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중고차 딜러인 A 씨는 “국내에 들어온 중고 수입차의 상당수가 거리계와 사고 여부가 조작됐다”며 “독일과 일본 등에서는 BMW와 벤츠 등 고급 차종의 주행거리를 10만 원 정도만 주면 조작해 주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조작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달 24일 중고 수입차의 주행거리계를 조작하거나 편법으로 배기가스 및 소음검사를 통과시킨 업자 8명을 붙잡아 2명을 구속했으며 관련 인증기관들에 대한 조사도 벌이겠다고 밝혔다.

○ 불법 인증업체 ‘활개’

국내 환경 및 안전법규에 맞지 않는 수입차들이 버젓이 정식 번호판을 달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7억 원을 호가하는 벤츠 ‘맥라렌 SLR’는 현재 국내에 6, 7대가 수입됐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번호판을 달았다.

그러나 SLR는 배기구가 차체의 옆으로 나와 국내 등록이 불가능하지만 어떻게 인증을 통과해 번호판을 달게 됐는지 의문을 낳고 있다.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등 3억∼5억 원에 이르는 다른 최고급 스포츠카들도 배기가스나 소음기준이 국내와 맞지 않아 인증 통과가 어렵지만 ‘눈가림 개조’로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전국에 수백 개에 이르는 외제차 수입대행 업체들은 임시로 흡음기와 배기가스를 줄여 주는 촉매컨버터를 추가해 인증을 통과한 뒤 원상 복구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중고차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김모(32) 씨는 “인증이 까다로운 중고 수입차는 불법개조는 기본이고 인증 과정에서 금품을 쓰지 않으면 사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지난해 수입한 페라리 1대가 소음 기준을 초과해 금품을 써서 인증을 받은 뒤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