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돈줄이냐 빚쟁이냐”…금융자본, 분배에 눈독

  • 입력 2006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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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의 요구에 무릎을 꿇은 셈이지요.”

한 자산운용사 간부는 최근 KT&G가 “앞으로 3년 동안 2조8000억 원을 배당과 자사주(自社株) 매입을 통해 주주들에게 돌려 주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올해 들어 미국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씨와 경영권 분쟁을 벌여 온 KT&G가 9일 아이칸 씨 측 요구를 대폭 받아들여 ‘기업 및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중장기 마스터 플랜’을 발표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한국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산업자본은 활발한 투자를 통해 회사를 키우는 데 전력을 다했고, 금융자본은 ‘돈줄’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런데 최근 이 둘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에 “도와줄 테니 더 빨리 성장하라”고 더는 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투자한 대가로 현찰(배당)을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앞으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갈등이 늘어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 ‘금융자본, 기세를 올리다’

지난해 3월 신사복 제조업체 캠브리지가 시가배당률(배당금을 현 주가로 나눈 것) 59%라는 기록적인 고배당을 발표하자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반응은 완전히 엇갈렸다. 당시 캠브리지는 회사 순이익(111억4358만 원)보다 많은 돈(136억6602만 원)을 배당하는 데 썼다.

한 투자자문사 사장은 “캠브리지는 현금을 들고 있어도 쓸 데가 없는 회사”라며 “남는 돈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반면 한 상장사 기업설명(IR) 담당 임원은 “앞으로 투자는 절대로 안 하겠다는 선언인데, 이는 기업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모조리 배당으로 쓰면 구멍가게와 다를 게 뭐냐”고 말했다.

이처럼 상반된 시각이 있지만 점차 금융자본의 논리가 우위를 점하는 양상이다. 최근 수년 동안 외국계 금융자본이 지배구조가 불안정한 국내기업들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큰 이익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 ‘주주 우선주의, 바람직한가’

이처럼 금융자본이 득세하는 가운데 ‘금융자본의 우위’가 경제 전반에 반드시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금융자본은 ‘안정적인 것’을 좋아한다. 이 때문에 기업의 성장보다 현금의 재분배를 선호하며 배당과 자사주 매입이라는 주주 우선주의 정책을 산업자본에 요구하는 일이 많다. KT&G가 아이칸 씨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며 굴복한 것도 이런 금융자본의 요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제 전체를 위해서는 산업자본이 분배보다 투자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기업이 성장을 하면 기업가치가 높아져 중장기적으로는 금융자본에도 이익이다.

내수기업으로 성장성이 낮다고 평가받던 신세계가 할인점 사업에 이어 활발한 중국 투자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은 것이 좋은 예다. 구학서 신세계 사장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은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도 외국인투자가들에게서 항의 한번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산업자본은 성장을 추구하고 금융자본은 투자 위험을 공유하는 자세를 가져야 경제가 역동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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