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정부 민간에 무언의 압박?

  • 입력 2006년 8월 8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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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8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으며 "정부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반발로 비정규직법 처리가 1년9개월째 지연되자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먼저 모범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이번 대책은 비정규직법 처리 재촉용인 동시에 민간부문에서도 정부대책과 같은 방안을 시행하도록 압박하는 카드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 시행에 필요한 예산 확보가 만만치 않은 데다 공공부문 효율성 제고, 노동시장 유연화 등 정부가 추진해온 일련의 혁신방향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누가 정규직 되나=공공부문 비정규직 31만1666명 가운데 한 곳에서 1년 이상 일한 상시 근무자는 10만7000여 명. 이 가운데 절반 남짓인 5만4000여 명이 정규직으로 바뀔 대상이다.

이들이 정규직 전환 요건인 '고용계약을 반복해 갱신한 기간제 근로자로서 상시·지속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 해당된다는 얘기다. 정부가 제시한 요건으로 볼 때 업종별로는 환경미화원, 도로보수원, 학교 조리종사원 등이 주로 정규직화 대상이 될 전망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공무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기계약근로자'(계약기간을 별도로 정하지 않아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신분으로 바뀌므로 고용은 안정되지만 공무원 또는 준공무원이 되지는 않는다.

또 정규직 전환이 바로 임금인상 등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해당 기관 내에 동종 정규직이 있고, 그들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을 때만 처우를 개선해준다.

▽정규직 전환 제외자 대책은=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더라도 처우개선, 차별금지 등 비정규직법에 포함된 내용은 적용받을 수 있다.

우선 청소원, 경비원 등 임금이 낮은 단순노무직의 처우가 개선될 전망이다.

이들 중 다수가 민간부문의 같은 업종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임금 인상에 1289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공공기관의 외부 용역을 받아 일하는 외주근로자의 처우도 개선된다.

정부는 외주 근로자의 용역 단가를 높이고 핵심 업무에 대해서는 외주를 주는 대신 발주기관이 직접 고용토록 지도키로 했다.

▽걸림돌과 반발 만만치 않아=이번 대책은 국가 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임금 인상 등 처우개선은 한 해 예산으로 끝나지 않고 매년 반복적인 재정 지출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 드는 2751억 원 가운데 1500여억 원을 해당 공기업이나 학교에 부담 지울 예정이어서 해당 기관의 반발도 예상된다.

재계가 느끼는 압박감도 상당하다. 정부가 노사 갈등의 새 불씨를 지폈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와 기존 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갈등이 생길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시장이 경직된 상태에서 공공부문의 정규직화는 고용유연성을 떨어뜨리고 고용을 되레 위축시킬 것이란 주장이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재계 "비정규직 대책은 이상론 치우친 포퓰리즘 정책"

재계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해 "민간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법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이상론에 치우친 또 하나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8일 "세금을 쏟아 부어 비정규직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려는 편의주의적 행정의 전형"이라며 "노동계가 이번 결정을 최저기준으로 삼고 기업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지만 민간기업 영역까지 같은 잣대를 들이대서는 절대 안 된다"고 밝혔다.

경총은 또 "기업 경영에서 인력운용의 유연성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각자의 사정과 업종의 특성 등을 고려해 민간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업무의 상시성(常時性)'을 정규직 전환의 기준으로 삼는 바람에 비정규직은 일시적 업무를 맡길 경우에만 뽑아야 할 형편"이라며 "이런 기준을 민간기업에게 적용하면 아예 비정규직을 뽑지 않아 실업자만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총은 이날 간담회를 위해 방문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이 같은 우려를 전달하고,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비정규직 대책이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면 노동유연성이 확보되지 못한 국내 실정아래서 기업들은 엄청난 비용부담으로 국제경쟁력이 추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대기업 임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논의되기 이전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먼저 검토됐어야 하는데 정부는 이런 준비도 없이 현실성 없는 대책을 내놓았다"고 지적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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