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르거나 혹은 떠나거나…위기의 휴대전화업계

  • 입력 2006년 7월 5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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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자회사 A사(社)에서 휴대전화를 개발하는 연구원 김모(30) 씨는 요즘 밤잠을 줄여 가며 남몰래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5년 전 휴대전화 연구원이 됐을 때만 해도 부푼 꿈과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연구원들의 감원(減員) 소식, 숨 막히는 일정으로 요구받는 새 모델 개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야근…. 그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전자공학 등의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로 이미 직장을 옮겼다. 그들은 ‘연구원’이란 직업을 미련 없이 벗어던진 채 한국도로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식품의약품안전청 등의 일반 직원으로 전직했다.》

○ 일자리가 불안한 연구원들

지난해 말 1차 구조조정을 단행한 휴대전화업체 팬택은 경영 합리화를 위해 지난달 ‘희망퇴직’ 형태로 또다시 감원을 했다. 퇴직자 중 절반은 연구 인력이었다.

최근 최종 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중소 휴대전화업체 VK도 4월 직원 수를 850명에서 650명으로 줄였다. 월 30만 대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만들던 이 회사의 경기 안성공장은 대부분의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월 10만 대 이하로 생산량을 줄였다.

LG전자는 올해 초 일부 연구원을 경기 평택공장의 ‘일반직’으로 발령해 사실상 퇴직을 종용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상당수 연구원이 회사를 떠났다.

블루블랙폰 이후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는 삼성전자의 분위기도 심상찮다.

삼성전자의 한 연구원은 “6개월 만에 새 모델을 내놓아야 하는 빠듯한 연구 일정에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미래도 불투명하다”면서 “30대 동료 연구원 중에는 중학교 교사가 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2004년 텔슨전자, 세원텔레콤, 맥슨텔레콤 등 중국시장에서 실패한 국내 중견 휴대전화 업체의 부도 이후 2년 만에 연구원들의 대량 실직 현상이 재연되는 셈이다.

○ 활로 잃은 국내 휴대전화업계

국내 휴대전화업체들은 원화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데다 판매 전략에서도 외국 경쟁사에 밀렸다.

2004년 ‘레이저’를 출시해 5000만 대를 판매한 미국 모토로라사(社)는 레이저에 버금가는 새 모델을 이달 중순 출시할 계획이어서 국내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

‘프리미엄 고가전략’을 내세운 삼성전자는 중저가 시장을 놓쳤다. LG전자는 제품 1개를 사면 3개를 공짜로 얹어 주는 ‘덤핑 마케팅’으로 브랜드 경쟁력만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팬택은 노키아와 제조자설계생산(ODM) 계약을 하고 제품을 공급하기로 해 자존심 대신 일단 생존을 택했다.

팬택 관계자는 “연구원들이 인력시장에 과잉 공급돼 업체로서는 당장 아쉽지 않다”며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R&D) 능력의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업체들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해외시장 규모를 줄이고 있다”며 “획기적인 히트작을 만든다면 곧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민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주임 연구원은 “기존의 양적인 생산에서 질적인 생산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며 “동시에 노키아나 모토로라처럼 생산 원가를 낮춰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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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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