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시비… 입찰가 유출… 국제분쟁 자초 정부주도 M&A낙제점

  • 입력 2006년 6월 2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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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중구 다동 예금보험공사 15층 대회의실. 대우건설 매각 심사를 위해 모인 공적자 금관리위원회 매각심사소위 민간위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우건설 매각을 맡고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제공한 요약 본 서류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 요약본에는 5개 인수 후보의 평가항목별 점수가 매겨져 있었는데 평가 근거가 어디에도 없었다. “누가, 어떤기준으로 점수를 매겼는지 추가 자료를 보자”는 위원들의 요구가 이어졌다. 결국 이날로 예정됐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발표는 연기됐다. 인수가격 6조6000억 원으로 국내 사상 최대 인수합병(M&A)이라는 대우건설 매각작업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뿐 아니다. 외환은행 대한생

명 LG카드 등 정부 주도로 이뤄졌거나 추진 중인 대형 M&A도 낙제점 수준이라는 평가다.》

○만신창이 된 대우건설 매각

대우건설 매각 과정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부터 매끄럽지 않았다. 캠코는 비(非)가격요소 가운데 △500억 원 이상 M&A 경험 △건설회사 보유 여부 △인수 후보의 도덕성 등 3가지를 뒤늦게 새로 포함시켰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정부가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두고 ‘밀어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모든 M&A에서 비밀유지협약(CA)을 한 당사자들은 전 과정에 대해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다. 특히 입찰가격처럼 본질적인 내용은 절대 외부로 새 나가면 안 된다. 그러나 5개 인수 후보가 캠코에 써낸 입찰가격이 유출됐다.

대우건설 노조는 “캠코는 특정 업체 밀어주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고 절차상의 흠 등을 들어 매각 무효소송까지 하겠다는 입장이다.

20일 진통을 겪은 공자위 매각심사소위는 21일 장소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으로 옮겨 회의를 재개했다.

공자위는 22일 본회의를 거쳐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계획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컨소시엄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잇단 비리연루 수사받기도

이미 매각이 끝난 외환은행과 대한생명은 헐값 매각 논란과 함께 매각과정에서 불거진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았거나 수사가 진행 중이다.

매각작업이 진행 중인 대우건설과 LG카드도 캠코와 산업은행의 관리능력 부족으로 매각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LG카드 매각 주체인 산은은 기본적인 법률 검토조차 하지 않아 공개매수 과정을 빼먹어 망신을 샀다. 산은은 실수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산은의 ‘부족한 실력’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관여한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싸고는 감사원과 재경부·금감위가 공방을 벌이고 있고, 대한생명 매도자인 예금보험공사와 매수자인 한화의 갈등은 국제분쟁으로 비화했다.

앞으로 대우조선 대우인터내셔널 현대건설 동아건설 등 대형 매물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정부를 믿고 맡겨도 되는지 회의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M&A 아마추어… 조급증도 한몫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근본 이유는 매각주체인 산은, 캠코, 예보 등이 M&A 분야에서는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산은은 M&A 실적과 능력에서 국내 최고라고 주장한다. 진로 신호제지 범양상선 뉴코아 기아특수강 등이 주요 M&A 실적이다.

하지만 산은이 해 온 M&A는 대부분 부실기업의 주채권은행으로 단순히 경쟁입찰을 부쳐 지분을 파는 데 그쳤다.

캠코의 ‘전공’은 부동산이다. 국유재산 관리와 압류 부동산을 처분하는 게 주 업무. M&A 업무를 맡은 것은 2004년 대우종합기계 매각이 처음이다. 대우건설 매각을 맡고 있는 기업개선부 임직원들의 M&A 경험도 대우종합기계 외에는 이렇다 할 게 없다.

대한생명의 매각 주체였던 예보 역시 M&A와는 거리가 멀다.

김영진M&A연구소의 김영진 소장은 “정부에는 전문가가 없고 M&A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문책을 받지도 않는다”며 “비전문가들이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M&A 업무를 하다 보니 매각 후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적자금을 조기 회수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압력과 정부의 조급증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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