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구제역, 한번 터지면 천문학적 피해

  • 입력 200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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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든 여행객이 반드시 밟고 지나가는 발판이 있다. 여행객들은 잘 모르고 지나치지만 이 발판은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전염병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지역에 다녀 온 여행객들의 신발을 소독해 준다.

전국 232개 입국장에는 모두 394개의 이런 소독판이 있다. 부산항은 물론 대통령이 이용하는 서울공항도 마찬가지다. 약 2시간마다 소독약을 갈아줘야 하는 이 소독판 관리에 드는 비용은 1년에 3억 원.

이처럼 가축 전염병 예방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예방에 힘쓰는 이유는 가축 전염병은 한 번 발생하면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전염에 의한 가축 폐사 등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관광과 무역 규모가 줄어 생기는 간접적인 경제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가축 전염병은 사회 경제적 질병(socio-economic disease)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나기 마련이다. ‘예방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 갈수록 늘어나는 가축 방역 예산

2000년 이후 정부는 당초 책정된 가축 방역 예산보다 연평균 3배를 더 쓴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 참조

2000년 구제역 발생 이후 2001년을 제외하고는 지난해까지 매년 브루셀라, 돼지콜레라, AI 등의 가축 전염병이 발생했다.

전염되거나 죽은 가축의 도살 처분 비용, 축산 농가 보상금, 소독약 비용 등을 예비비로 충당하거나 다른 예산을 전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가축 방역 예산은 연평균 22% 증가하는 선에서 그쳤다.

농림부 김창섭 가축방역과장은 “예산이 부족한 듯하지만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예방에 치중하는 수밖에 없다”며 “전염병이 생겨서 피해가 난 만큼 이듬해에 예산을 늘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사회 경제적 질병의 폐해

2002년 국내에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호주와 뉴질랜드는 한국산 라면 수입을 금지했다. 라면 수프에 쇠고기 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축 전염병의 간접적인 경제적 피해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2000년 국내에 발생한 구제역의 경우 직접 피해액은 3000억 원이었지만 간접 피해액까지 합치면 2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 위기 관리 수준 미흡

농림부는 27일 경기 안양시의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포천시의 한 목장에서 ‘가축 질병 위기 대응 통합 훈련’을 실시한다. 가축 전염병에 대한 위기 대응 방법과 내용을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숙지시키기 위해서다. 가축 전염병이 실제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

그러나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은 예방 수준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수석연구원은 “일본에서 고베 지진이 일어났을 때 2주 만에 피해 규모가 조사됐다”며 “예방도 중요하지만 우리 정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방역 대책을 체계화하고 숙달하는 부분이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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