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1조 사회환원]“제발 이쯤서” 검찰 압박에 ‘고육책’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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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회장 5분간 30여 차례 “죄송합니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중국 출장을 마친 뒤 19일 귀국했다. 침통한 표정의 정 회장은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을 빠져나가는 5분여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30여 차례나 “죄송합니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인천=연합뉴스
鄭회장 5분간 30여 차례 “죄송합니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중국 출장을 마친 뒤 19일 귀국했다. 침통한 표정의 정 회장은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을 빠져나가는 5분여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30여 차례나 “죄송합니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인천=연합뉴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정몽구(鄭夢九) 회장 부자(父子)가 보유한 글로비스 지분(60%) 전량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것은 시시각각 조여 오는 검찰의 압박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총수 일가의 ‘사재(私財) 출연’을 통해 여론의 비판을 누그러뜨리면서 정 회장과 아들 정의선(鄭義宣) 사장에 대한 ‘선처’를 간접적으로 호소하는 뜻도 깔려 있는 듯하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최대 고민은 그룹 경영에 타격이 될 수 있는 정 회장 부자의 신병 처리 문제에 대해 검찰의 의중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 “편법 승계 논란 잠재우자”

현대차그룹 발표의 핵심 내용은 정 사장과 정 회장이 각각 31.9%, 28.1%로 나눠 갖고 있는 글로비스 지분 전부를 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한다는 것.

글로비스는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계열사다. 따라서 이 회사 주식을 전량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이런 논란을 잠재우려는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여론으로부터 편법 경영권 승계라고 비판받아 온 글로비스 주식의 평가 차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부자의 사재 출연 방침을 밝히면서 구체적 일정은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다만 글로비스의 주가 폭락과 관련해 “글로비스 주식 기부 시점에 주가가 떨어지면 총수 일가의 현금이나 다른 주식 등을 통해 사회 환원 금액을 1조 원으로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올해 원가 절감을 이유로 협력업체의 납품 단가를 인하한 데 대한 보상 및 지원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

○ 삼성 따라했지만 효과는…

현대차그룹의 발표는 삼성그룹의 2월 사회공헌 발표와 닮은 부분이 많다.

총수 일가의 사재 출연은 물론 사과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주요 임원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모습이나 일자리 창출 등의 대책이 모두 그렇다.

현대차그룹이 “사외이사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밝힌 것도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구성안과 닮았다.

하지만 이건희(李健熙) 회장이 미국에 나가 있던 5개월간 ‘숙고’해 세부 방안을 내놓은 삼성과는 달리 현대차그룹의 사회공헌 발표는 큰 줄기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추후에 밝히겠다”고만 했다.

총수 일가의 소환이 임박한 상황도 삼성보다 훨씬 절박하다.

○ 반응은 엇갈려

전국경제인연합회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는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이 국민으로부터 따뜻하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한다”며 “수사가 조속히 마무리돼 현대차가 세계 자동차업계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시점이 적절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다른 대기업 임원은 “이번 일로 다른 기업의 사회공헌 스트레스가 더 커지게 됐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불법 행위자들의 연이은 사회 환원 발언은 ‘법치주의’를 돈으로 흥정하려는 것으로 대단히 부적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의 홍진표(洪晋杓) 정책실장은 “기업이 투자하고 고용하는 데 써야 할 돈이 압력에 의해 사회에 헌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비자금 불린 돈’ 환수 가능할까▼

‘회사돈 횡령한 기업주는 처벌을 넘어 불법으로 얻은 경제적 이득까지 환수를 추진한다.’

검찰이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비자금을 통해 불린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리 검토에 나섰다.

검찰은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주식 헌납이 현대차그룹 수사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수사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환수 근거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법’=이 법은 기업주의 횡령이나 성매매, 주가 조작 등 경제 범죄, 환투기와 같은 외환 범죄 등 중대 범죄를 통해 얻은 이익을 환수할 목적으로 2001년 제정돼 시행 중이다.

이 법은 ‘범죄 수익’과 ‘범죄 수익에서 유래한 재산’을 국가가 환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범죄 수익이란 중대 범죄에 의해 생긴 재산이나 범죄 행위를 하면서 받은 보수를 말한다. ‘범죄 수익에서 유래한 재산’은 범죄 수익의 과실로 얻은 재산을 가리킨다.

범죄 수익이나 범죄 수익에서 유래한 재산 등이 다른 재산과 혼합된 형태로 있는 ‘혼화(混化) 재산’도 범죄 관련 부분만큼 환수 대상이 된다.

범죄수익규제법에 범죄 수익으로 간주되는 범죄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정 회장 부자가 빼돌려 사용한 비자금과 그 비자금을 토대로 증식된 재산은 환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제한과 한계도 있다. 우선 이미 사용된 비자금은 환수 대상이 될 수 없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의 형태로 보존돼 있는 범죄 수익이어야 환수가 가능하다.

또 기업주의 횡령과 같은 재산범죄의 경우 법인이나 주주 등 범죄(또는 범죄 수익)의 피해자가 있으면 국가가 범죄 수익을 환수할 수 없도록 명시돼 있다.

한편 이 법 10조는 ‘여러 사정으로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없으면 그 범죄 수익에 해당하는 가액(돈)을 추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범죄 수익이 실제 환수될 수 있을지는 최종 수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 부자 글로비스 지분 헌납 가능할까=검찰은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지분이 범죄 수익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범죄 수익의 피해자가 있으면 실제 국가 환수는 어렵게 될 수도 있다.

또 검찰은 글로비스 이외의 다른 계열사 지분에도 비자금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만약 정 사장이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힘을 쏟고 있는 기아차 지분에 비자금이 포함돼 있다면 현대차그룹의 후계 구도가 흔들릴 수도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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