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준 전 외환銀상무 “퇴사할 때 폭탄 3개 갖고 나왔다”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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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풍-전용준씨 구속 수감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매각 실무 책임자였던 전용준 씨(오른쪽)와 전 씨에게 2억 원을 건넨 매각 자문사 엘리어트홀딩스 대표 박순풍 씨가 10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미옥 기자
박순풍-전용준씨 구속 수감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매각 실무 책임자였던 전용준 씨(오른쪽)와 전 씨에게 2억 원을 건넨 매각 자문사 엘리어트홀딩스 대표 박순풍 씨가 10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미옥 기자
전용준 전 외환은행 상무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할 당시 매각 작업의 실무 책임자였다. 당시 직책은 경영전략부장이었지만 이강원 행장의 신임이 두터워 매각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 행장의 서울고 후배인 데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여서 이 행장이 믿고 일을 맡겼다는 것.

그래서 인수합병(M&A) 경험이 없었던 엘리어트홀딩스를 매각 자문사로 선정한 데는 전 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전 씨는 엘리어트홀딩스 박순풍 대표와 서울고, 서울대 무역학과 동기로 1979년 나란히 외환은행에 입행했다.

전 씨는 외환은행이 론스타로 넘어간 뒤에도 상무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리처드 웨커 행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가 인테리어 공사 중 발각돼 해고됐다. 이에 반발해 부당 해고라며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패소하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전 씨는 퇴사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은행에서 폭탄 3개를 갖고 나왔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폭탄 3개 중 하나는 2003년 7월 15일 외환은행 매각 관련 대책회의 내용을 적은 비망록이다. 나머지 폭탄 2개는 소송에서 은행 측을 압박하기 위해 만들어 낸 ‘공포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터지면 자신도 다치는 ‘핵폭탄’이라는 추측도 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외환銀 매각실무 전용준 씨가 밝힌 당시 상황>

2003년 론스타에 '정부 승인 받을 수 있느냐'고 묻자
"당신들 신경 쓸 문제 아니다(None of your business)" 큰소리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에 외환은행이 헐값으로 매각됐다는 의혹이 규명될까. 감사원과 검찰은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조작됐다는 정황을 10일 포착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로비. 홍진환 기자

《“론스타에 ‘정부 승인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당신들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어요. 불쾌했지만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양호(邊陽浩·보고펀드 대표)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해결사’ 역할을 했습니다. 딜(deal·거래)이 벽에 부닥칠 때마다 그가 나서 ‘딜의 금메달리스트’로 불렸어요.”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밝혀 줄 핵심 인물로 꼽히는 전용준(全用準) 전 외환은행 상무가 검찰에 구속되기 전에 본보 취재팀을 만나 매각 과정의 전모를 털어놓았다. 당시 경영전략부장이었던 그는 외환은행 매각 작업의 실무 책임자였다.》

전 씨의 발언은 파장을 불러 올 대목이 적지 않지만 ‘방어용 변명’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 매각 자문사였던 엘리어트홀딩스에서 수억 원의 돈을 받은 점 등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 론스타, “정부 승인 문제는 외환은행 일이 아니다”

전 씨의 말에 따르면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처음 관심을 보인 것은 2002년 10월경이다.

론스타코리아의 1, 2인자였던 스티븐 리(해외 도피 중) 씨와 유회원(柳會源·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 사장) 씨가 이강원(李康源) 당시 외환은행장을 만나 “외환은행이 어려운 걸로 아는데 우리가 투자하겠다”고 제의했다는 것.

그 뒤 론스타 본사의 엘리스 쇼트 부회장이 공식 서신을 보냈다. 투자금액은 2003년 1월에는 5000억∼6000억 원 수준이었지만 2월경 지분 51%를 인수하겠다고 했고 3월에는투자 제의금액이 1조 원으로 늘었다.

그는 “사모투자펀드인 론스타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국내 은행을 인수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부 승인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쪽은 ‘당신들은 신경 쓰지 마라(None of your business)’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전 씨는 “상당히 불쾌했지만 할 말이 없었다”며 “이미 정부와 대화가 진척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 변 전 국장은 해결사?

전 씨는 외환은행 매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2003년 7월 15일 ‘대책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그때 이미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주기로 방향이 정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은행법상 금융회사가 아닌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변 전 국장은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될 때’는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강력히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주장했다는 것.

또 전 씨는 “변 전 국장은 유 사장과도 친하다. 론스타의 내부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나도 깜짝 놀랐다”며 “그 뒤에도 매각에 브레이크가 걸릴 때마다 변 전 국장이 해결사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변 전 국장은 “당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겨야 한다는 판단을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내 역할에 충실했다”며 유 사장과의 친분 관계에 대해서는 “고교(경기고) 선배이긴 하지만 가깝지 않다”고 해명했다.

○ 문제의 BIS 비율

헐값 매각 의혹의 핵심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과 관련해 전 씨는 금융감독 당국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비관적 시나리오를 상정할 때 BIS 비율이 6.16%로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의 ‘의문의 팩스 5장’을 작성한 것은 지난해 숨진 외환은행 허모 차장이지만 이를 지시한 것은 금융감독원이라는 것.

전 씨는 “처음에는 5%대의 BIS 비율이 나왔는데 금감원 이곤학 수석검사역이 허 차장에게 ‘BIS 비율을 6%대로 높여 달라’고 개인적으로 부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은행에 대한 경영 개선 권고를 풀어준 지 1년도 안 됐는데 외자를 유치해야 할 정도로 경영이 악화됐다고 하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러나 금감원은 10일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금감원 국장이 조작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며 앞으로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사실 관계가 밝혀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 이 전 행장도 당했다?

이 전 행장은 론스타에 외환은행의 경영권을 넘겨주고 거액의 대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전 씨는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이 전 행장이 1년에 20만 주씩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받기로 했는데 그것까지 포기하면서 경영권을 넘겼다는 것. 전 씨는 이 전 행장의 고교 후배다.

그는 “론스타가 이 전 행장에게 계속 행장을 맡기겠다는 식으로 얘기하다 나중에 말을 바꿨다”며 “이 전 행장이 배신감을 느끼고 고뇌하는 것을 옆에서 봤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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