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업계의 숲 가꾸기 ‘百年大計’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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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뒤의 일입니다. 어떻게 될 줄 알고….”

1993년 한솔제지 임원회의. 호주 대규모 조림지(造林地) 조성에 반대하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기업은 100년, 200년 뒤까지도 살아남아야 합니다. 10년은 금방 옵니다. 원료를 자급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습니다.” 현재 한솔그룹 회장인 조동길 당시 한솔제지 기획담당이사는 반대를 무릅쓰고 나무를 심었다. 지금까지 호주와 뉴질랜드를 합쳐1000억 원이 들어갔다.

11년 뒤인 2004년 말, 이곳에서 펄프용 칩이 나왔다. 현재 매출은 연 200억 원. 2017년 벌채를 시작할 뉴질랜드까지 합하면 앞으로 10년 동안 이곳에서 2000억 원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탄소배출권 거래에 대비한 잠재 가치도 1000억 원에 이른다. 탄소배출권은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업체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할 경우 조림사업체에 돈을 주고 권리를 사는 것을 말한다.

요즘 제지업계에 숲 가꾸기가 한창이다. 그동안 원료인 펄프를 수입해 종이를 만드는 데 치중해 왔지만 장기적으로 1차 원료인 나무를 확보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식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교토의정서 발효로 탄소배출권 거래가 시작되면서 조림사업이 새로운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림에 제지산업의 미래가 있다

우리나라는 계절의 변화로 온도차가 커 나무가 자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펄프 생산에 적합한 수종(樹種)도 많지 않다. 그래서 제지업계는 해외 조림에 주력하고 있다.

한솔제지에 이어 제지업계 2위인 무림제지는 1998년부터 중국 랴오닝(遼寧) 성 후루다오(葫蘆島) 시 정부와 합작으로 조림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의 426ha를 1만 ha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회사는 중국 러시아를 대상으로 추가 조림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펄프사인 동해펄프도 1996년 중국 하이난(海南) 섬에 조성한 3850ha의 조림지에서 3년 전부터 펄프를 만들고 있다.

국내 조림지는 공익 목적으로 조성된다. 숲을 만들고 민간에 개방해 ‘환경 파괴 굴뚝 기업’이라는 인식을 ‘친환경 기업’으로 바꾸려는 것.

복사용지업계 선두 주자인 한국제지는 경북 경주시∼포항시에 걸쳐 있는 2750ha의 조림지를 올해부터 일반에 개방했다. 3월 미대 학생들의 작품 전시회를 연 데 이어 1일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묘목 심기 행사를 벌였다.

○원료와 탄소배출권,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조림은 우선 안정적인 원료 공급을 위한 것이지만 최근엔 ‘탄소배출권’이라는 고부가가치 사업이 재발견되고 있다. 지난해 교토의정서 발효로 탄소배출권 거래가 시작되면서 ‘탄소를 뿜어 내는’ 기업들이 ‘탄소를 없애 주는’ 조림지에 대한 탄소배출권을 사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솔그룹은 호주 조림지에서 250만 t, 뉴질랜드에서 530만 t의 탄소배출권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000억 원.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구매 타진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아직까지 각종 규정이 모호하고 시장이 무르익지 않아 가격이 제대로 형성될 때까지 관망하고 있다.

제지업계 조림지 현황
기업조림지면적현황
한솔제지호주1만6300ha펄프회사에 납품 중
뉴질랜드8900ha기르는 중
경북 봉화군 경주시, 전남 고흥군1만4000ha공익 목적
무림제지중국 랴오닝 성426ha기르는 중
한국제지경북 경주, 포항시경기 여주군 등5100ha공익 목적
동해펄프강원 인제군, 경북 포항시3500ha원료 25% 충당
중국 하이난 섬3850ha원료 10% 충당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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