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도 세일즈맨 있다…투숙객 90%는 이들 손에

  • 입력 2006년 3월 2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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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방한.’

특급호텔의 영업담당 직원들은 외교통상부 못지않게 카리모프 대통령의 방한 소식에 민첩하게 움직였다.

해외 국빈 방문 정보를 먼저 입수해 한시라도 먼저 유치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카리모프 대통령 국빈 방문 ‘유치전’의 승자는 롯데호텔이었다.

롯데호텔 판촉팀 박지영 지배인은 “외교가(街) 모임에 자주 나가 각국 대사들과 친분을 쌓아 누가 언제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고객이 제 발로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직원들이 기업, 여행사, 대사관 등을 발로 뛰어야 호텔이 산다. 실제로 전체 고객의 80∼90%를 영업직원들이 유치한다.

○ 뛰지 않으면 손님은 없다

“담당구역에서 ‘물 먹으면’ 죽음이에요.”

JW메리어트 판촉부 백상석 과장에게 하루 일과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매일 아침 경쟁 호텔의 실적과 비교해 뒤지면 즉시 불호령이 떨어진다.

다른 호텔에 담당 기업을 빼앗기기라도 하는 날엔 밤잠을 설친다.

호텔의 주 고객은 기업, 여행사, 대사관 등에서 나온다. 개인 고객은 전체 매출의 10% 안팎에 그친다.

큰 기업들은 해외 거래처 손님과 대규모 행사를 위해 한 호텔을 지정해 연간 단위로 계약한다.

이런 기업을 유치하면 수천 개의 객실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효과를 낸다.

따라서 웬만한 기업은 담당을 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기업 임원들의 비서를 초청해 영화시사회나 파티도 자주 연다. 비서들이 호텔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웨스틴조선호텔 ‘판촉왕’으로 뽑힌 이석형 지배인은 매일 오전 신문의 경제면을 꼼꼼히 읽는다.

그가 담당하는 외국계 금융사와 컨설팅 업계 현안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 지배인은 “인수합병(M&A) 건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회사 임직원들은 외부 노출을 꺼려 단골 호텔을 피한다”며 “이들의 방한 정보를 입수하려면 신문을 꼼꼼히 읽고 업계의 ‘마당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서비스까지 책임져야

“방 팔았다고 그만이면 다신 우리 호텔을 이용 안 합니다.”

롯데호텔 박 지배인은 최근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다녀왔다. 이달 말 방한하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취향을 입수해 식단과 객실 인테리어 등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달 방한한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이 어린이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어린 조카에게 한복을 입혀 환영의 꽃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국에 사는 인도 어린이 40여 명을 모아 대통령과의 만남도 주선했다.

JW메리어트의 백 과장은 ‘한류(韓流) 패키지’를 만들어 일본 여행사에 한 번에 4000객실을 판 적이 있다.

그는 “단순히 방만 팔려고 하면 상대방이 외면한다”며 “우리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미끼를 던져야 반응이 온다”고 말했다.

롯데호텔 외국기업 담당 줄리아 벤베뉴 지배인은 이탈리아인 여성이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그는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관광 코스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관광 가이드’로 통한다. 고객이 좋아할 것 같다고 판단되면 경쟁 호텔 나이트클럽에도 주저하지 않고 데려 간다.

벤베뉴 지배인은 “4∼6월 성수기를 앞두고 고객 유치전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며 “하지만 눈앞의 실적보다 고객과의 인간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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