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본격 도입 퇴직연금제]퇴직금제 어떻게 달라지나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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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부터 국내에도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다.

앞으로 5년간은 현행 퇴직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2010년에는 퇴직연금에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퇴직금 제도의 골간이 바뀌는 것이다.

퇴직연금제도는 매년 임금총액의 12분의 1씩 쌓여 가는 현행 퇴직금을 금융회사에 맡겨 회사가 망하더라도 근로자의 노후생활 안정을 꾀하는 제도.

금융회사들은 서로 “우리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며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섰다.

○ 어떤 제도가 유리할까

퇴직연금에는 퇴직할 때 받을 돈을 미리 확정해 놓는 ‘확정급여형(DB)’과 운용 결과에 따라 퇴직 때 받는 금액이 달라지는 ‘확정기여형(DC)’ 두 종류가 있다.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노사 합의사항이다. 어느 것이 유리한지는 급여인상률과 운용수익률 가운데 어느 것이 높은가에 따라 달라진다.

세전(稅前) 연봉이 3500만 원인 대기업 입사 5년차 박모(30) 대리가 45세에 퇴직한 뒤 55세에 퇴직연금을 받는 사례를 가정해 얼마를 받게 되는지 계산해 보자.

앞으로 15년간 급여가 연평균 6% 인상되고 운용 수익률이 4.5%라고 가정하면 DB가 DC보다 유리하다. 반대로 급여상승률이 6%인데 수익률이 6.5%라면 DC가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결국 근로자는 어떤 제도를 선택할지를 놓고 사업주와 협상할 때 장기 수익률 전망을 잘 해야 하는 셈이다.

DB와 현행 퇴직금제도는 퇴직 때 일시금으로 받는 돈이 같지만 연금으로 받을 때는 세제 차이 때문에 DB가 더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 치열한 시장 선점 경쟁

금융권은 초기 퇴직연금 시장을 ‘편도 1차로’에 비유한다. 제도 시행 초기에 선두로 나서면 계속 강자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따라서 2010년 50조 원으로 추정되는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한국투자증권은 대형 기업 600개를 대상으로 전국 순회 설명회를 마쳤다. 삼성증권은 일본 노무라증권과 컨설팅 계약을 한 데 이어 최근 100여 개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신한 조흥은행, 굿모닝신한증권 등 신한금융지주 계열사들도 최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동 설명회를 가졌다.

퇴직연금 시스템 개발 경쟁도 뜨겁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투신운용과 공동으로 퇴직연금 시스템 개발을 끝냈다. 교보생명은 12월 오픈을 목표로 전산시스템을 독자 개발 중이다. 대한생명 현대해상 동부화재 등 12개 보험회사는 보험개발원을 간사로 해 전산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일단 현행 퇴직금제도에서 퇴직보험이나 신탁을 다루고 있는 보험회사들이 유리하지만 기업 고객이 많은 은행과 달아오르는 주식시장을 배경으로 한 증권회사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퇴직연금제도가 현행 퇴직금제도와 다른 점은 근로자들이 노후 대비를 위해 다양한 재테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과 근로자들의 인식이 아직 ‘퇴직금 적립 방법이 바뀐다’는 정도에 머물고 있는 데다 금융회사들의 상품 개발 노력이나 정부와 감독당국의 준비가 소홀해 초기 제도 정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나은행 신탁부 이수용 차장은 “일본은 퇴직연금 관련 법 조항이 300개에 이르지만 한국은 100개도 안 돼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제도의 세제 규정이 더 명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은행 신탁사업단 조만제 차장은 “세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일시금이 유리한지, 연금으로 받는 것이 유리한지에 대해 자신 있게 상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퇴직연금제 궁금한 것들▼

퇴직연금제도는 생소한 용어가 많아 이해가 쉽지 않다. 문답으로 알아본다.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의 차이점은….

“DB는 퇴직할 때 받는 돈이 정해져 있다. 사업주가 자신의 책임으로 펀드를 선택해 적립금을 운용한다. 운용실적이 미리 정한 퇴직급여에 못 미치면 사업주가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반면 DC는 사업주의 부담금이 사전에 확정되고 퇴직급여는 적립금 운용실적에 따라 바뀐다. 운용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한 기업이 DB와 DC를 동시에 도입할 수 있나.

“노사가 합의하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업무가 복잡해져 기업의 노무관리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개인퇴직계좌는 무엇인가.

“퇴직연금 일시금을 받은 퇴직자가 최종 은퇴시점까지 적립금을 운용해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 있는 계좌다. 운용 책임은 퇴직자 개인에게 있으며 자기 부담으로 추가 납입도 가능하다. 직장 이동이 잦은 근로자는 퇴직금을 생활자금으로 써버리는 사례가 많아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가입은 자유다.”

―퇴직급여는 연금으로만 받을 수 있나.

“일시금으로 탈 수도 있다. 퇴직 또는 퇴사할 때 선택하면 된다. 다만 연금을 신청하려면 55세 이상, 가입기간 10년 이상이어야 한다.”

―근로자가 목돈이 필요할 때 퇴직연금을 미리 활용할 수는 없나.

“적립금의 50% 이내에서 담보대출(DB, DC)과 중도 인출제도(DC)를 이용할 수 있다.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근로자 본인 또는 부양가족이 6개월 이상 요양 등에 해당하면 된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투자위험 부담땐 확정급여형을”▼

한국에선 12월 1일 퇴직연금제도가 첫선을 보이지만 미국의 퇴직연금 역사는 18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연금만 다룬 삼성생명 조지 베럼(사진) 고문은 “오랜 기간 일했지만 확정급여형(DB)이 좋은지, 확정기여형(DC)이 유리한지 판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퇴직연금 시장을 염두에 두고 2년 6개월 전에 그를 영입했다.

베럼 고문은 “미국에선 1940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DB가 중심이었지만 이후 DC로 바뀌어 1995년 비율이 역전됐다”고 소개했다.

이를 두고 마치 연금제도가 오래된 국가일수록 DC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노사 합의로 제도를 선택하게 돼 있지만 미국에선 법적으로 근로자 동의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어 입김이 센 일부 노조를 빼면 고용주의 뜻에 따라 제도가 선택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

그는 “퇴직연금이 DC로 몰리는 것은 근로자에게는 ‘재앙’일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위험이 고스란히 근로자에게 떠넘겨지기 때문. 각자 직접 투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에선 1999년까지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서 DC로 돈이 몰렸지만 2000년 초반 주가가 폭락해 수많은 근로자가 투자 손실을 입기도 했다.

베럼 고문은 “임금인상률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자신이 있으면 DC를, 투자 위험이 부담스러우면 DB를 선택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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