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먹고싶다]<中>국산은 안전한가

  • 입력 2005년 10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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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경기 부천시 축산물공판장에서 검사관들이 도축된 돼지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축산물 도축장 검사에서 항생제 검출 건수가 늘고 있지만 제품 출하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아 문제다. 부천=강병기 기자
27일 경기 부천시 축산물공판장에서 검사관들이 도축된 돼지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축산물 도축장 검사에서 항생제 검출 건수가 늘고 있지만 제품 출하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아 문제다. 부천=강병기 기자
《경기 파주시 적성면에서 10년째 목장을 운영하는 유종규(柳宗規·45) 씨는 최근 젖소를 도축장에 내놨다가 낭패를 봤다. 도축한 고기에서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것. “연초에 소가 유방염에 걸려 연고를 발라 줬죠. 우유에는 없던 항생제 성분이 고기에서 나올 줄은 몰랐어요.” 젖소 고기는 전량 폐기됐다. 4000평 규모의 채소밭을 가꾸는 진우용(陳禹容·39) 씨도 8월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 유기농법으로 채소를 길렀지만 땅 속에 있던 살충제가 채소에서 검출돼 다 기른 상추와 아욱을 버려야 했다.》

수입 식품뿐 아니라 국산 농축수산물도 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농림부에 따르면 지난해 항생제가 기준치 이상 나온 축산물은 290건으로 2002년 145건의 2배 수준으로 많아졌다. 같은 기간 농약이 과다하게 검출된 농산물은 600건에서 770건으로 늘었다.

유해물질 검출 방식과 허용 기준치가 그대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생산자의 식품안전 의식이 더 떨어진 셈이다.

○ 축산물 항생제 검사 취약

26일 오전 경기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 축산물공판장에 한우 30마리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1마리씩 차례로 2평 남짓한 우리로 들어서자 축산위생연구소 강순근(姜淳根·41) 검사관이 육안으로 소를 점검했다. 소요시간은 5분.

도축 후에는 위, 간 등 내장 검사가 진행됐다. 장출혈, 지방간, 복막염 여부 등을 살폈다.

도축된 고기 가운데 1% 남짓만 항생제 잔류 검사를 받는다. 부천 도축장에선 한 달에 도축되는 4000여 마리의 소 중 60마리에 대해 항생제 잔류 여부를 검사한다.

문제는 항생제 검사를 하고 있는 동안 해당 쇠고기가 출하된다는 점. 강 검사관은 “주사 자국 등 특별히 항생제 투여가 의심되는 증거가 없으면 농민들의 민원 때문에 출하 시점을 늦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 문제점이 발견돼도 이미 출하된 것은 회수하지 않는다.

항생제가 기준치 이상 나와 6개월간 소를 도축할 수 없는 농가가 다른 농가 명의로 소를 도축하기도 한다.

○ 농산물 안전 기준이 없다

현재 농림부에 등록된 농작물은 모두 1152가지. 이 중 농약관리법에 따라 안전사용 기준이 정해진 작물은 710가지다. 나머지 작물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의 판단에 따라 안전기준이 다르게 적용된다.

농관원 권혁(權赫·34) 조사원도 최근 이런 문제로 애를 먹었다.

경기 광명시 소하동 일대 비닐하우스에서 ‘에이팜’이란 살충제를 친 아욱을 채취했지만 안전사용 기준이 없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규정에도 아욱 관련 안전기준은 없다. 결국 모든 채소류 중 ‘에이팜’ 성분의 안전기준이 있는 채소를 찾아서 그 기준에 따라 안전성을 추정해야 했다.

농관원 경기지원 박제원(朴帝遠) 분석실장은 “미국에선 품목별 안전기준이 없는 농약이 검출되면 아예 출하를 못 한다”고 설명했다.

○ 수산물, 신종 유해물질 검사 거의 안해

수산물에 대한 안전성 검사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말라카이트그린 파동 때도 해양부는 당초 전국 2923곳 내수면 양식장 가운데 0.4%에도 못 미치는 11곳만 조사하고 “국내산은 안전하다”고 했다.

수산물 검역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내산은 기본적으로 안전하다고 보기 때문에 새로운 유해물질과 관련한 조사를 거의 안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9월 국내 수산물 양식장이 동물약품 도소매상에서 구입한 항생제는 13만6121kg으로 2003년 전체(13만2125kg)보다 많았다. 반면 수의사 처방에 따른 항생제 사용량은 줄었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가축이나 어류에 항생제를 사용하려면 수의사 처방이 있어야 하지만 한국은 그런 규정이 없다.

양식장이 영세하다는 점도 위생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 정부 관계자는 “안전성 지도를 해도 돈이 없다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한국인에 맞는 안전기준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 농축수산물의 안전도를 검사하는 기준이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이 많이 먹는 식품에 따른 유해물질의 평균 잔류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 기준을 가져다 쓰기 때문.

농림부 심상인(沈相寅) 소비안전과장은 “제대로 된 안전기준을 만들려면 100명 안팎의 연구 인력을 구성해 장기간 식생활 습관과 작물별 유해물질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금속 관련 기준이 거의 없는 것도 문제. 농산물 중에선 쌀에 대해서만 카드뮴이 0.2ppm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기준이 있을 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올해 말까지 무 배추 등 10가지 농산물에 대한 중금속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검사인력 부족은 여전하다.

부천축산물공판장에선 검사관 2명이 하루에 소 150마리, 돼지 1100마리를 검사한다. 적정 검사 수준의 2배여서 정밀한 검사가 어렵다.

서울대 이형주(李炯周·식품공학) 교수는 “부처 간 인력과 예산을 조정해서라도 식품안전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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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광명=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국내産도 생산지표시 의무화를▼

식품의 안전성을 높이려면 쌀, 쇠고기, 생선 등의 생산지역을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원산지 표시제를 전면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중국산이 국산으로 포장돼 팔리는가 하면 다른 지방에서 생산된 쌀이 경기미로 둔갑하는 일을 막자는 것.

농림부와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수입 농축수산물은 모두 원산지 표기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반면 국내산은 시군 등 특정 지역을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국산 농축산물의 원산지를 ‘국내산’으로만 표기토록 하고 구체적인 지역 명을 쓰는 것은 생산자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도 생산지를 반드시 표시할 필요가 없다.

수산물도 마찬가지. 국내산임을 홍보하기 위해 생산 및 유통업자 스스로 ‘목포산’ ‘통영산’ 등으로 표시할 뿐이다. 이 때문에 국내산 수산물은 유해 물질이 검출됐을 때 양식장 등 생산지를 추적하기 어렵다.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정부는 농산물 이력추적관리 제도를 내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키로 했다.

이 제도는 농산물의 생산, 유통, 판매 등의 과정을 기록해 관리하는 것으로 식품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현재 쌀, 채소, 과일, 특용작물 등 96개 품목을 재배하는 전국 965개 농가가 시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수산물 생산이력제는 수출용 김, 넙치, 굴에만 시범 실시하고 있다. 이는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을 ‘바코드’에 입력해 판매하는 제도다.

해양부 관계자는 “생산이력제의 필요성은 알지만 생산자와 유통업자의 비용 부담이 커 확산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농축수산물 대부분에 대해 생산이력제 수준으로 강화된 원산지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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