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주성]실체없는 ‘反기업 정서’

  • 입력 2005년 10월 20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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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정감사에서 삼성이 뭇매를 맞으며 국민의 반기업 정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가뜩이나 노사 갈등, 정부 규제 등에 지쳐 보따리 싸서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늘고 있는데 국내 대표 기업을 이렇게 몰아붙여도 되느냐는 논리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온 국민이 그렇게 기업을 싫어한다면 공공 부문이 커질 것 같은데 실제 우리 경제를 이끄는 것은 민간 기업들이다. 주로 소수 대기업이 비판의 대상이라고 하지만 취업을 앞둔 학생들의 직장 선호도를 보면 이들이 상위 순번이다. 경영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 부족을 문제 삼지만 정작 이 분야는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소위 반기업 정서라고 인용되는 현상들은 그 자체로 정형화된 실체라기보다는 대부분 숨어 있는 다른 사안들의 증세이거나, 통계적 사실을 잘못 해석한 결과다. 국민의 기업관을 묻는 설문조사를 보면 으레 기업의 목적으로서 이윤 추구와 이윤 배분 항목을 병렬로 놓는 질문이 등장한다. 응답자들이 이윤 추구보다는 자신의 현재 위치에 맞추어 이윤의 환원이나 근로자 복지 향상 등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마디로 질문이 우매한 것이지 국민이 잔인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의 일차적 목적은 이윤 추구다. 기업에 대한 국민정서를 제대로 읽으려면 이윤 추구 자체가 아니라 창출한 이윤이 어떻게 주주와 기타 이해 당사자 간에 배분돼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어디까지가 공평한 분배인가를 묻는 것만큼이나 일률적인 해답을 얻기 어렵다. 기업, 곧 이윤의 성격을 보는 시각은 나라마다 다르고 또 시대에 따라 변한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기업은 국가의 산물이다. 주식회사가 갖는 유한책임의 특권을 정한 것도 국가이고 그 대가로 공익적인 서비스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국가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철도나 운하처럼 공익성이 크지만 자본 소요도 큰 사업을 감당하기 위해 단순한 조합 형태를 넘어서는 기업이 필요하게 됐다. 즉, 회사 설립의 근거 자체가 사회적 공헌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기업과 국가, 주주와 이해 당사자 간의 줄다리기가 끊임없이 지속되며 나라마다 각각의 사회경제 구조에 맞는 기업문화가 정착되었다. 기업의 독립성과 주주 권한이 강조되는 미국과 영국에서조차도 정부 개입의 폐해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이념이 확산되는 1980년대에 들어서서야 주주보호 운동이 본격화된다.

우리의 경우 과거 정부 주도의 자원 배분을 용이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재벌이 육성됐고 그 과정에서 소수 기업에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 자연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 대기업들은 세금, 사회 기부 나아가 밀실에서 건네지는 선물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누린 특권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반대급부의 수준이 충분한지, 또한 그 배분이 공평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재벌의 사회적 기여가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재벌은 충분히 대가를 치르는데 그 혜택을 엉뚱한 정치인들이 독식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기업의 이윤 배분과 관련해 이런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으로 성숙해 가는 한 과정일 뿐이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경영이 투명해지면 재벌의 ‘원죄’도 서서히 희석될 것이다. 당장 억울하다고 국민 기업관을 뜯어고치겠다며 경제단체가 나서는 것은 ‘국민이 우매해 자기 생각을 몰라준다’는 정치인들의 주장만큼이나 허망하다. 지금 기업에 필요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앞으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줄겠지만 환경이나 근로조건 등 사회적 규제는 늘어나고 복지 부담 역시 기업에 일부 전가될 것이다. 정부를 간섭이나 일삼는 불편한 상대, 은혜를 베푸는 우월적 존재로 보지 말고 함께 경제를 지탱할 파트너로 여기며 정책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약하면 나라가 흔들리고 기업이 망하면 일자리가 사라진다. 기업이건 정부건 서운한 국민 여론에 접하더라도 그냥 애정 어린 채찍이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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