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 "정책만들자는 건지 전쟁 치르자는 건지…"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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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국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을 정책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관료들이 정책을 만드는 것인지 (국민과) 전쟁을 치르자는 것인지 헷갈린다. 장관은 할 말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낸 진념(陳稔·사진)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가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공직사회의 무기력증을 강하게 질타했다.

진 전 부총리는 9일 저녁 서강대 경제대학원의 오피니언리더스프로그램(OLP) 수강생들을 상대로 가진 ‘한국경제의 비전과 우리의 선택’이란 제목의 특별강연에서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우려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체성 확립과 ‘정치로부터 경제의 분리’를 강조했다. 그는 최근 발족한 한국선진화포럼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특강 요지.

○ 국민에게 비전 못주는 정부

세계는 지금 청군(해양세력)과 홍군(대륙세력) 간에 치열한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경제는 선진국 문턱에서 10년 이상 정체돼 있다. 비전과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경제주체들은 무기력증에 빠졌다.

과연 지금 국민에게 비전을 주는 정부나 정치집단이 있는가. 사회기강이 흐트러지면서 분열과 갈등, 불안도 커지고 있다. 과거에 대한 논쟁은 확산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 공직자는 지금 어디서 뭘하나

정책 결정과정에서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 대신 ‘뜨거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만 있는 것 같다. 부동산 정책만 하더라도 정책을 펴자는 것인지 전쟁을 치르자는 것인지 도무지 헷갈린다.

강남에 있는 것을 뺏어다가 강북에 주는 게 분배가 아니다. 100년 전의 ‘헨리 조지’라는 사람 얘기가 지금 느닷없이 왜 나오는가.

부동산 문제를 경제논리가 아닌 빈부격차 관점에서 보는 것은 잘못된 결과를 낳기 쉽다.

예전에는 장관 하는 게 공무원들에겐 꿈이요, 희망이었지만 지금처럼 장관이 이것저것 눈치보고 할 소리도 못하면 장관을 해서 무엇 하겠는가. 경제부총리는 어디 서 있고 나라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 경제를 위해 실용주의 노선을

경제 문제에선 시장경제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 산업화 세력의 공을 무시하지 말고 그들의 다이너미즘(역동성)을 살리도록 해줘야 한다. 강남과 비강남, 서울대와 비서울대, 진보와 보수, 386과 비386으로 편 가르기를 해서는 국민들의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다시 뛰는 한국경제를 위해선 실용주의 노선을 재확인해야 한다.

개혁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경제는 정치에서 최대한 분리하고 권한과 책임은 분명하게 하자.

NATO(No Action Talk Only), NARO(No Action Roadmap Only), NAPO(No Action Plan Only) 같은 말이 더 이상 안 나오게 실천하는 행정을 펴야 한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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