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의 사람과 기업]환란당시 김우중 vs 관료

  • 입력 2005년 6월 16일 0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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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3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그룹 붕괴 원인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신흥 관료체제와의 갈등 때문”이라고 말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1999년 당시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과 강봉균(康奉均) 재정경제부 장관을 겨냥한 말이다. 두 사람이 실질적으로 대우그룹 해체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1998, 99년 ‘재계의 대변자’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화려하게 도약했으나 경제 관료들은 ‘세계 경영은 실패했다’며 시장논리로 대우그룹을 몰아붙였다.

양측은 사사건건 충돌하며 갈등을 빚었다. 결과는 칼자루를 쥐고 있던 관료들의 승리로 끝났고 김 전 회장은 해외 도피의 길에 올랐다.

○ ‘무역흑자 500억 달러’로 돌파 시도

외환위기의 한파가 몰아닥친 1998년 초 김 전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500억 달러 무역흑자론’을 제안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려면 수입을 줄이면서 수출 총력 체제로 가야 하며 그렇게 한다면 300억∼50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낼 수 있다는 것.

김 전 회장은 동시에 “정부가 외환보유액에서 50억 달러를 풀어 무역금융을 지원해 달라”로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강봉균 대통령경제수석을 비롯한 관료들은 “재벌들이 부채비율을 낮출 생각은 안하고 외상수출로 장난을 치려 한다, 해외사업이 많은 대우그룹의 생존전략에 불과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 전 수석은 “김 전 회장의 의도는 무역금융을 받는 것이었지만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정책합의 때문에 풀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 무위로 끝난 ‘슈퍼뱅크’ 구상

김 전 회장은 DJ 당선자 시절부터 ‘슈퍼뱅크 설립’론을 전달했다.

삼성 대우 현대 LG 등 4대 그룹이 5억 달러씩 내고 씨티, 체이스맨해튼 등 미국계 은행이 20억 달러를 출자해 자본금 4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합작은행을 만들겠다는 것. 이 구상은 1999년 2월 전경련이 발표한 ‘비전 2003’에도 담겨 있다.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의 원인을 금융시스템이 낙후됐기 때문이라고 봤다. 따라서 기업들이 슈퍼뱅크를 설립해 이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

반면 경제 관료들은 재벌들이 과도한 차입을 바탕으로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으므로 구조조정을 통한 부채비율 축소를 내세웠다.

슈퍼뱅크론은 외국은행들이 출자합의 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재계의 출자금 갹출도 지연되면서 결국 무산됐다.

○ 김우중-이헌재의 악연

김 전 회장은 1982년 당시 재무부에서 나온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을 ㈜대우 상무로 스카우트해 중책을 맡겼다. 그러나 1998년 두 사람은 기업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금감위원장과 구조조정을 당하는 전경련 회장으로 만났다.

김 전 회장은 이 전 위원장이 대우를 잘 이해하고 있어 도와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의 답변은 “회장님, 세상이 바뀌었습니다”였다.

김 전 회장은 끊임없이 정부와 채권단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 전 위원장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시장논리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거부했다.

금감위의 통제를 받았던 채권은행단은 이 전 위원장의 지침에 따라 기존 경영진을 모두 퇴진시키고 대우를 해체했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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