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매매가격 기준 증여세 부과…납세자들 불만

  • 입력 2005년 6월 8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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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20대 K 씨는 지난해 아버지에게서 아파트 한 채를 물려받았다. 그는 당시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국세청 기준시가(6억 원)에 맞춰 증여세 9900만 원을 냈다.

까맣게 잊고 있던 K 씨는 최근 ‘세금 폭탄’을 맞았다.

관할 세무서로부터 증여세 추징분 7800만 원과 납부 불성실 가산세(연 10.95%)까지 내라는 통보를 받은 것.

증여일로부터 2개월 뒤 같은 단지, 같은 평형 아파트가 8억 원에 거래됐기 때문에 이에 맞춰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게 세무서의 논리였다.

K 씨의 세무 대리인은 “세무서의 설명은 납세자에게 수천 가구나 되는 단지의 미래 매매사례 가격까지 내다보라는 격”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를 포함해 아파트 3채를 가진 박모(62·여) 씨. 올해부터 양도소득세가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중과세되는 데다 재산세 부담이 급증할 것을 우려해 자녀에게 도곡동의 주상복합아파트를 증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박 씨는 증여를 하지 않고 있다.

기준시가대로 자진 신고하면 증여세는 2억3400만 원. 반면 인근 아파트의 매매사례 가격(16억 원)을 감안해 자진 신고하면 증여세가 4억2100만 원으로 치솟는다.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 세금도 아깝지만 박 씨가 증여를 미루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박 씨는 “늘어나는 증여세는 감당할 수 있지만 나중에 16억 원보다 더 높은 매매사례가 나오면 세무조사를 당할 수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증여세를 둘러싼 납세자의 혼란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증여 대상 아파트가 아닌 이웃집의 매매사례 가격을 기준으로 증여세를 물릴 수 있도록 세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 세법 어떻게 바뀌었나

재정경제부는 2003년 말 상속 증여세법을 개정해 이듬해부터 시행했다.

종전에는 직접 상속 및 증여의 대상이 되는 재산이 감정을 받거나 팔릴 때만 시가(時價)가 인정돼 많은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해당 재산과 비슷한 물건이 감정 또는 매매된 사례가 생기면 이를 기준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

면적과 위치, 용도가 비슷한 다른 아파트의 실거래 가격인 ‘매매사례 가격’을 상속 증여세를 내는 기준으로 삼는 것.

종전에는 증여일 전후로 각각 3개월간 해당 재산의 시가(감정가액, 매매사례가액, 경매가액, 공매가액, 보상가액 등)를 기준으로 세액을 산정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대부분 증여 시점에 이런 시가 자료가 없어 국세청의 기준시가가 주로 이용됐다.

지난해부터 국세청 기준시가보다 높은 매매사례 가격이 기준가액이 되는 바람에 증여세 부담이 한층 커졌을 뿐 아니라 기준도 모호해 납세자가 혼란에 빠졌다.

H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 세무사는 “올해 들어 증여세 관련 전화 문의가 2시간에 1통꼴로 걸려오고 거의 매일 대면상담도 하지만 매매사례 가격을 설명해도 고객들이 수긍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 “남의 일이 아니에요”

문제는 매매사례 가격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아파트는 층과 향(向), 수리 여부에 따라 매매가격이 다양해 어떤 사례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세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과세당국은 다양한 매매사례 가격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을 기준으로 증여세를 추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선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도 나온다.

더욱이 매매사례 가격은 증여세뿐 아니라 상속세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고액 자산가는 물론 주택 1채를 가진 사람에게도 해당돼 앞으로 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예컨대 기준시가 7억 원짜리 아파트를 아내와 공동명의로 했다면 공제금액(3억 원) 이상의 부분에 대해서는 매매사례 가격에 따라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또 배우자가 없는 1주택 보유자가 재산을 상속할 때 공제금액(주택 및 기타 재산 포함) 한도는 5억 원이어서 이를 초과하는 주택을 상속하면 매매사례 가격이 적용된다.

아주대 현진권(玄鎭權·경제학) 교수는 “어떤 매매사례를 적용할지에 대한 과세당국의 재량이 커져 부작용이 생길 소지가 있다”며 “실거래가 시스템이 구축돼 매매사례 가격이 객관화되기 전까지는 기준시가로 단일화해 납세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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