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韓銀 총재의 너무 가벼운 입

  • 입력 2005년 5월 20일 04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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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 ‘투자대상 통화 다변화’ 보고서로 국제 금융시장을 흔들어 놓았던 한국은행이 또 사고를 쳤다.

박승(朴昇) 총재가 빌미를 제공했다.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8일 박 총재와 인터뷰를 가진 뒤 “한은이 외환시장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바람에 미국 뉴욕과 서울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 사태의 전말

박 총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국가신용도를 보장하기에 충분한 준비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외환보유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FT는 이를 앞으로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데 주저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라고 해석해 ‘서울, 외환시장 개입을 꺼릴 것’이라는 제목을 붙여 19일자 아시아판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인터넷판에도 긴급 뉴스로 띄웠다.

이 소식은 18일 오후 2시(현지 시간) 뉴욕 외환시장에 전해져 달러당 1004∼1005원대에 거래되던 원-달러 역외선물환(NDF) 가격이 곧 996원대로 떨어졌다.

서울에서도 19일 개장과 동시에 원-달러 환율이 전날 종가보다 5.7원 내린 999.5원으로 급락했다.

한은은 즉각 “FT의 보도내용이 와전됐다”고 해명하면서 외환시장에 개입해 ‘실탄’을 동원했다. 8억∼9억 달러가량을 시장에 쏟아 부은 것으로 외환딜러들은 추정했다. 박 총재의 말을 수습하는 데 든 비용이 8000억∼9000억 원대에 이른 셈이다.

○ 한은, “억울하다”

한은은 총재의 발언 가운데 일부만을 집중 부각시킨 FT의 보도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인터뷰에 배석했던 한은 관계자는 “총재가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더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지 외환보유액과 시장 개입을 직접 연결시키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 금융시장 “한은 총재 철없다”

한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박 총재의 ‘입’이 너무 가볍다는 데 토를 달지 않는다.

박 총재는 18일에는 로이터통신 기자를 만나 “경기가 나빠져 연내 콜금리를 더 내리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콜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한은 총재가 콜금리 수준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 브랜다이스대 스티븐 체케티 교수는 최근 FT에 기고한 ‘중앙은행은 침묵해야 한다’라는 칼럼에서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달러화 환율에 대해 묻자 그린스펀은 여러 차례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청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노 코멘트(No Comment).”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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