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 기업 성공뒤엔 현지인 신뢰구축 있었다

  • 입력 2005년 4월 8일 02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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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지난해 12월 23일 베이징현대차 임직원들이 누적생산 20만 대를 기념해 현지 공장에서 축하행사를 벌이고 있다. ②삼성전자가 15년째 후원을 하고 있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 ③지난달 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전자제품 전시회인 ‘텔렉스포 2005’를 찾은 현지인들이 LG전자 전시장 앞에서 이 회사의 신형 휴대전화를 살펴보고 있다. ④브라질 상파울루의 모룸비 경기장에서 상파울루축구클럽의 경기를 보러 온 팬들이 LG전자의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고 있다. 연합 동아일보 자료 사진
①지난해 12월 23일 베이징현대차 임직원들이 누적생산 20만 대를 기념해 현지 공장에서 축하행사를 벌이고 있다. ②삼성전자가 15년째 후원을 하고 있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 ③지난달 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전자제품 전시회인 ‘텔렉스포 2005’를 찾은 현지인들이 LG전자 전시장 앞에서 이 회사의 신형 휴대전화를 살펴보고 있다. ④브라질 상파울루의 모룸비 경기장에서 상파울루축구클럽의 경기를 보러 온 팬들이 LG전자의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고 있다. 연합 동아일보 자료 사진
중국시장에서 급성장하면서 1위 자리까지 넘보는 현대자동차, 남미시장에서 TV 1위를 차지하고 있는 LG전자, 러시아 휴대전화 시장 1위 자리를 굳힌 삼성전자, 한국 수입차 업계 1위 BMW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하나같이 진출해 있던 나라가 위기를 맞았을 때 적극적인 경영을 펼쳤고 이를 통해 확보한 지역사회와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정상급으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외 경영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관계 마케팅(Relationship Marketing)’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관계 마케팅은 고객과 장기적 신뢰관계를 맺는 기업이 결국 높은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이론이다.

▽시장의 위기를 신뢰구축의 기회로=현대자동차의 중국 내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는 중국 진출 2년 반 만에 기존 1위였던 폴크스바겐과 판매대수 1, 2위를 다투고 있다. 올해 1∼2월에는 베이징 시내 택시 공급을 거의 ‘싹쓸이’했다.

약진의 배경에는 높은 품질, 가격경쟁력과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2003년 4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발생했을 때 베이징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기업의 주재원들은 집 밖에 나서지 않았고 일부 기업은 철수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전혀 다르게 대응했다. “외신에 보도된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보고를 받은 본사는 기존 주재원 60여 명 외에 출장직원 30명을 추가로 파견해 영업을 강화했다. ‘베이징 시 사스퇴치 대책본부’에는 차량을 기증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서구 언론이 사스의 위험성을 과장한다’고 불만을 가졌던 중국 정부와 베이징 시는 현대차를 모범사례로 높이 평가했다”면서 “이때 얻은 신뢰가 정부의 영향력이 큰 중국시장에서 현대차가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BMW는 한국의 외환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활용한 대표적 외국기업이다.

1996년 1만315대였던 한국의 수입차 판매대수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8136대, 이듬해인 1998년 2075대로 급감했다. 많은 수입차 업체들이 달러당 원화 환율이 폭등(원화가치 폭락)하자 지사를 철수하거나 판촉 활동을 포기했다.

하지만 BMW 본사는 한국 측 딜러에게 연 5%의 낮은 금리로 2000만 달러를 빌려줘 판매망을 유지하도록 했다. 시중금리가 20%를 웃돌던 상황에서 파격적 지원이었다. 중소 딜러들의 대금입금 시한도 연장해 줬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수입차 업계 순위 2∼5위에 머물던 BMW는 1999년 수입차 업계 1위로 뛰어올랐다.

▽장기적 신뢰가 성공의 비결=LG전자는 1997년 3000만 달러를 들여 브라질 법인을 세웠다. 그러나 포화상태였던 브라질 가전시장은 일본 한국 업체들의 가격인하 경쟁까지 겹쳐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1999년 1월 브라질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들어가 일주일 만에 통화가치가 80% 하락하자 샤프, 산요 등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 업체들은 서둘러 빠져나갔다.

브라질의 경기침체는 2003년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LG전자는 미국 전자업체가 스폰서를 포기한 상파울루축구클럽(SPFC) 후원을 자청해 ‘지역밀착 경영’에 나섰다. 이후 ‘엘리제(LG의 브라질어 발음)’ 브랜드의 인기는 급격히 높아졌다. 현재 LG전자는 브라질의 TV, 휴대전화, DVD플레이어 시장에서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옛 소련 붕괴로 정부 지원이 끊어져 어려움을 겪던 러시아 모스크바시의 ‘볼쇼이 극장’을 1991년부터 15년째 후원해 왔다. 러시아인들의 사랑을 받는 문화공간을 후원한 노력으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러시아인이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로 선정됐다. 삼성전자 휴대전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러시아시장 1위로 올라섰다.

이들 기업의 성공은 고객, 지역사회, 거래업체와 맺은 ‘관계’를 중시하며 장기적 신뢰를 쌓아올린 ‘관계 마케팅’의 승리로 분석된다.

최근 ‘전략적 관계 마케팅’이라는 책을 펴낸 연세대 경영학과 이동진(李東振) 교수는 “사회적 변동이 큰 신흥시장에서는 고객과 맺은 신뢰의 수준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면서 “해외 진출 한국기업들은 더욱 ‘관계 마케팅’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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