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그녀의 엉덩이를 감싸라” 멀티플렉스 ‘의자 유혹’

  • 입력 2005년 3월 30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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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극장을 찾는 ‘결혼 사유’는 아니지만, 그 극장을 외면하는 ‘이혼 사유’가 된다.”

국내 한 멀티플렉스 극장 마케팅 담당 이사는 시설경쟁의 핵심인 의자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른바 극장시설의 ‘3S’로 꼽히는 스크린(screen), 사운드(sound), 의자(seat). 최근 인터넷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가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중 의자는 응답자의 64%가 ‘좋은 극장’의 조건 1순위로 꼽았을 정도로 핵심 요소다. CGV, 메가박스, 프리머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관객을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손’인 의자를 두고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의 핵심: 앞뒤 거리=극장은 의자 사이즈를 표시할 때 앞뒤 길이를 ‘의자 방석의 앞뒤 길이’가 아닌 ‘앞좌석 등판부터 바로 뒷좌석 등판까지의 길이’로 표시한다. 왜일까? 관객이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의자 경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거리는 1000mm에서 1100mm로 늘어나는 추세. 또 1200mm가량 되는 곳에는 고정형 의자가 아니라, 등받이를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틸팅(tilting)’ 의자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틸팅 기능을 갖춘 의자는 뒷사람이 발로 건드릴 경우 관람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최근에는 피하는 경향도 있다.

○타깃 따라 바뀌는 의자=10, 20대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CGV는 내부 여직원들을 견본 제품에 미리 앉아보게 해 안락함을 점검한다. 등받이 높이도 여성에 맞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체가 큰 남성이 앉기에는 등받이가 낮을 수 있다. 코엑스와 대형 호텔 밀집지역에 있는 메가박스는 외국인이 많이 찾을 것으로 보고 의자의 좌우 폭이 565mm인 초 광대형 의자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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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신하다고 좋을까?=의자 쿠션은 오래 앉아 있어도 탄성이 유지되는 자동차 시트용 스펀지를 주로 쓴다. 너무 푹신하면 처음엔 엉덩이를 감싸는 느낌이 좋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엉덩이가 뜨거워지는 단점이 있다. 다소 딱딱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40대 이상은 일단 푹신한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 마케팅 담당자들의 경험.

○몰랐던 비밀들=컵 홀더의 지름이 의자 사이의 공간보다 큰 경우 연인 관객이 외면한다. 껴안기 위해 팔걸이를 들어올리는데 컵 홀더 부분이 의자사이에 걸려 불편하기 때문이다. 머리 부위가 초승달 모양으로 패어 있어 머리를 둥그렇게 감싸는 ‘안온한’ 의자도 연인들에겐 적(敵)이다. 옆 사람 어깨에 머리를 기댈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 전북 일부 극장에선 의자 등받이 아래쪽에 우퍼(저음용 스피커)를 내장한 경우도 있다.

극장 체인과 지점에 따라 의자는 각기 다르다. 국내 제작업체는 삼광산업과 혜성산업이 양분하고 있고, 수입품은 미국의 어윈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개당 가격은 국산 20만 원대, 어윈사 것은 30만 원대. 일부 극장은 스페인산 휘가레스 제품을 쓴다.

○의자는 깨끗할까=진공청소기로 좌석의 먼지를 없애는 청소는 매일 하지만, 전용 기계를 사용하는 스팀청소(혹은 거품청소)는 대략 4∼6개월에 한 번씩 한다. 관객으로선 즐거운 사실이 아니지만, 극장에선 개당 4000∼5000원에 이르는 청소비용이 만만치 않다. 머리에 헤어 젤이나 무스를 떡칠하듯 바르는 관객이 늘면서 머리가 닿는 부분(헤드 레스트·head rest)의 오염이 심한 것도 극장의 골칫거리다. 프리머스와 롯데시네마 체인 중 일부에선 머리부위에 인조가죽을 대 관람 후 왁스로 닦아 내기도 한다.

○분쟁=멀티플렉스는 객석의 뒤로 갈수록 계단의 경사가 급해지는 ‘스타디움’ 형태가 많다. 그래서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앞사람 의자 등받이에 뒷사람이 발을 올려놓아 종종 시비가 붙는다. 컵 홀더를 두고도 분쟁이 인다. 도대체 오른 편과 왼편 어느 쪽이 내 것인가.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한 극장체인 지점장은 “컵 홀더의 소유권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심판’을 내려줄 절대적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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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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