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락]인력 남아돌아도 일 못시키는 현대차

  • 입력 2005년 3월 25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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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일감이 없어 쉬고, 한쪽에서는 일손이 모자라 특근을 해야 하고….”

25일 오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포터와 스타렉스 등을 생산하는 4공장은 내수 부진으로 9일부터 이달 말까지 주간근무 조(1300여 명)가 임시 휴무 중이어서 생산라인이 멈춰 있었다. 반면 베르나와 싼타페, 에쿠스 등을 생산하는 1∼3공장은 주야간 조가 매일 잔업 2시간을 하고도 토 일요일 특근을 해야 할 정도로 일손이 모자란다.

일감이 없는 4공장 근로자를 일손이 부족한 1∼3공장에 투입하면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되지만 이 회사에선 그 간단한 일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이 회사의 단체협약(제34조)에는 근로자를 타 부서로 배치 전환할 경우 노조와 협의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노조가 “임시방편적인 인력 배치 전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동의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 측은 4공장 야간 조를 임시 휴무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조는 같은 시간을 일해도 야간수당 등이 붙어 주간 조에 비해 임금을 70%가량 더 받을 수 있는 야간 조 근무를 요구했고 결국 회사도 이를 받아들였다.

주간 조 휴무로 임금이 크게 줄어들 것 같지만 단체협약에 따라 이들에게도 통상임금의 100%가 지급된다.

이런 비효율성은 이번 경우뿐만이 아니다. 레저용 차량인 투싼이 개발된 2003년 11월 회사 측은 주문량이 3개월치나 밀리자 시간당생산량(UPH)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노조의 동의를 받아내기까지 무려 11개월이 걸렸다. 투싼 주문자 상당수는 차량 인도가 늦어지자 다른 차종으로 바꾼 뒤였다.

2000년 이후 이 회사에서는 시장의 수요에 따라 차량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노사 협상을 매듭짓는 데 최소 4개월이 소요됐다.

한 상공계 인사는 “근로자 부서 배치나 생산량 조정조차 신속히 결정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어떻게 세계 자동차 업계와 경쟁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밤낮없이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근대적 노사관계가 발목을 잡는 현실…. 이런 불합치의 공존이 오늘 우리 기업들의 모습인 것 같아 안타깝다.

정재락 사회부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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