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조 ‘취업장사]채용청탁자 ‘X파일’ 있나 촉각

  • 입력 2005년 1월 24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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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조원들 어디로…24일 기아자동차 노조 대의원대회가 열린 경기 광명시 소하동 기아차 공장에서 노조원들로 보이는 직원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다. 광명=박주일 기자
기아차 노조원들 어디로…
24일 기아자동차 노조 대의원대회가 열린 경기 광명시 소하동 기아차 공장에서 노조원들로 보이는 직원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다. 광명=박주일 기자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근로자 채용비리’와 관련해 채용 청탁자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존재할까.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노조 간부, 지역 정치인, 공무원, 회사 관계자 등 ‘채용청탁자 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될 경우 기아차 광주공장의 채용비리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여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이 21일 수색에서 인사·감사 관련 서류 일체를 압수해 분류작업을 벌이고 있는 데다 이미 전현직 인사담당자를 불러 조사한 바 있어 리스트가 발견될 가능성은 꽤 높은 상태다.

지난해 입사한 1079명의 경우 회사 측이 ‘부적격자’로 분류한 399명은 물론 나머지 인원도 ‘추천인’ 명목의 청탁자가 있다고 볼 때 명단작성은 실무적으로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

정치인 등 외부인사 청탁설이 보도된 24일 오전 본보 취재진에 “정말로 ‘청탁자 리스트’가 있느냐?” 또는 “혹 이름이 들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느냐?”는 등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취재진은 광주공장 전 인사팀장 A 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리스트의 존재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으나 그는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즉답을 피했다. 긍정도 안 했지만 부인도 않았다.

광주지검의 한 수사관계자는 “기아차 내부의 필요에 따라 리스트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짐작할 수 있지만 아직 직접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광주=김 권 기자 goqud@donga.com

▼“수천만원 써서 입사했는데 어쩌나…”▼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인근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강모 씨(48)는 지난해 여름 가게에 드나들던 기아차 하청업체 이사 유모 씨(74)로부터 “기아차 간부와 잘 알고 있는데 돈을 좀 쓰면 취직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강 씨는 이웃 2명과 조카를 유 씨에게 소개했고 이들은 5000만 원을 마련해 유 씨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유 씨는 어느 날 사라져 버렸고 사기꾼으로 몰린 강 씨는 이웃과 조카에게 생돈을 물어줬다.

전남 보성군에 사는 오모 씨(43) 역시 전직 기아차 노조 간부 출신이라는 주모 씨(42)에게 조카의 취직 부탁과 함께 500만 원을 건넸다가 돈만 날렸다.

오 씨는 “지난해 5월 조카와 함께 원서를 접수하러 갔을 때 다른 지원자들로부터 ‘최소한 노조간부나 본사 임원 끗발은 있어야 붙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때부터 어디 줄 댈 데가 있는지 알아보고 다녔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아차에 입사한 사람들도 한숨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사측이 취업비리에 연루된 근로자들을 모두 해고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사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기아차 노조의 인터넷 게시판은 “수천만 원 썼는데…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관련자는 전원 해고된다는 게 사실인가요?” “노조 간부들 모두 구속시켜야 한다” 등 걱정과 원망이 뒤섞인 글로 도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기아차 노조는 24일 외부인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던 게시판을 비공개로 변경했다.

광주=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풀어야할 의문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사의 ‘근로자 채용 담합’과 관련해 갖가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모두 검찰의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할 의혹들이다.

▽사측의 상식 밖 저자세=현대·기아차그룹 감사팀은 지난해 11월 말 광주공장 계약직 근로자 채용 시 399명의 부적격자가 입사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당초 6개월 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로 했던 계획을 보류하고 부적격자를 가려내 퇴사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 같은 방침을 철회하고 올해 1월 3일 전원을 정규직으로 발령내고 대신 총책임자인 공장장 김모 씨와 인사담당자 등 7명을 인사 조치했다.

사측은 이에 대해 “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정규직 전환을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무리 노조의 힘이 세다고 해도 ‘명백한 비리’가 있는 이상 굴복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비리에 대해 제동을 걸지 못한 것은 사측도 근로자 채용과 관련해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노조 외 다른 추천자는 없나=지난해 입사한 부적격자는 399명으로 전체 입사자의 37%에 이른다. 노조가 추천했다고 하는 20∼30%가 모두 부적격자라 해도 220∼330명가량이다.

그렇다고 노조가 일부러 부적격자만 골라 추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채용 적격자 중에도 상당수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입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노조 이외에도 부적격자를 추천한 주체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박홍귀(朴弘貴) 전 기아차 노조위원장이 23일 “채용 과정에서 노조 간부는 물론 회사 임원, 정치인 등 회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다 추천자로 봐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아가 광주공장 외의 다른 공장에서도 비슷한 비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기아차 채용 비리 전반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혹투성이인 채용과정=회사 측은 자격요건에 못 미치는 지원자 399명을 입사시키기 위해 지원자의 학력이나 자격증, 군복무, 취업경력 등을 합산한 점수를 올려주는 편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공장 관계자는 “서류전형 결과 합격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총점을 상향조정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항목별 점수를 일일이 고치지 않고 총점만 수정해 감사팀이 조작 사실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신체검사도 의혹투성이다. 기아차 노조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자동차 조립공정에 투입할 수 없는 신체적 장애를 가진 부적격자가 버젓이 활보하고 다녀 위화감마저 든다’는 익명의 제보가 올랐다.

이와 관련해 직원 채용 건강검진을 맡은 광주 북구 두암동 H의원 관계자는 “병원에서는 혈액검사와 X선 검사 두 가지만 했고 광주공장 인력관리팀 직원들이 병원 6층 사무실에서 따로 신체검사를 해 우리는 신체 이상자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비리를 총지휘한 책임자는 누구일까.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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