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영수증제 내년 시행]중소 자영업자 “새해가 두렵다”

  • 입력 2004년 12월 26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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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늘고 매출은 줄어들 텐데…. 새해가 되는 것이 무섭습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한 달 매출 1000만 원 정도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모 씨(52)는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현금영수증제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자니 매출의 40%나 되는 ‘무(無)자료 거래’가 드러나면서 세금이 늘어 한 달 130만∼150만 원에 불과한 수입이 더 줄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발급하지 않으면 영수증을 쉽게 내주는 할인점 등으로 손님을 뺏기고 세무조사까지 받을까 우려한다. 》

내년 1월 현금영수증제도 시행을 앞두고 중소 자영업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숨겨진 ‘세원(稅源)’을 드러내 ‘조세의 형평성’을 높인다는 취지지만 내수침체로 허덕이는 중소 유통업체, 음식점 주인들은 ‘생존’을 위협하는 제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대형-소형업체 양극화 심해진다=5000원 이상 현금 거래에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는 가맹점 수는 올해 말 전국적으로 45만 곳, 내년 중에는 100만 곳 이상으로 늘어난다.

또 정부는 가맹점을 늘리기 위해 복권 제도를 시행하고 신용카드 수준의 소득공제 혜택도 주기로 했다. 소득이 없는 배우자, 자녀, 부모 등의 영수증도 합산해 소득공제 혜택을 주기 때문에 발급을 요구하는 소비자는 급속히 늘어날 전망.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金京源) 상무는 “신용카드 확산 때 그랬듯 영수증 발급을 잘해 주는 대형 매장은 손님이 늘고 발급을 꺼리는 중소형 업체는 손님이 줄어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며 “중소 자영업이 위축되면 체감경기도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격 인상-이중 가격제도 등 부작용 우려=서울 도심에서 설렁탕집을 운영하는 홍모 씨(38)는 최근 세무사와 현금영수증제 문제로 상담을 했다. 결론은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해 영수증을 발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

홍 씨는 “한 해 매출 12억 원 중 세금신고에서 뺐던 4억∼5억 원이 영수증 발급으로 노출되면 지난해 6000만 원 정도였던 세금이 1억 원 이상 될 것”이라며 “현재 이익을 유지하려면 주변 가게와 ‘담합’이라도 해서 음식 가격을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무자료 거래의 비중이 높은 서울 용산, 테크노마트 등의 전자제품업체들은 현금영수증을 받지 않는 고객에게 가격을 깎아주는 ‘이중 가격제’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재정경제부는 내년 수입이 올해보다 30% 이상 늘어난 업소는 늘어난 세금 전액을, 2006년 수입이 전년보다 30% 이상 늘면 절반을 돌려주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중소 자영업자들은 “한두 해 세금을 깎아줘도 이후 수입이 노출돼 세금을 모두 내면 투자비용도 뽑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 “세금 늘면 세율 낮춰야”=자영업자의 생활을 위협하지 않고 현금영수증제를 정착시키려면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등의 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1999년부터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 등으로 자영업자의 세원이 크게 노출됐는데도 걷힌 세금이 얼마나 늘었는지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아주대 사회과학부 현진권(玄鎭權·경제학) 교수는 “현재의 세율은 ‘탈세(脫稅)’를 전제로 만들어진 것으로 세원이 투명해지면 세율인하, 조세감면 등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그러지 않을 경우 중소 자영업자 등 저소득층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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