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경제정책]시장현실 誤判 - 규제 정책이 不況 불렀다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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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끊긴 재래시장경기 불황 속에서 텅 빈 재래시장. 서울 종로구 종로5가 광장시장 상인들의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 -연합
손님끊긴 재래시장
경기 불황 속에서 텅 빈 재래시장. 서울 종로구 종로5가 광장시장 상인들의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 -연합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데에는 국제유가 급등 등 경제의 돌발변수 외에 정부의 정책 실패도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 대책은 거래 마비에 따른 부동산시장의 침체를 불렀다. 이에 따라 내수 부문 중 유일하게 ‘경기 안전판’ 역할을 하던 건설투자를 급격히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올해 하반기 들어 2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했지만 내수가 회복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고유가와 원자재값 급등, 가계부채 외에 정부의 ‘현실 오판’과 규제적 성격의 정책도 불황이 계속되는 원인이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동산 대책과 건설경기 추락=올해 부동산시장의 특징은 거래 마비에 따른 시장의 침체로 요약된다.

많은 경제학자는 그 원인으로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꼽는다. 실제로 지난해 10·29 부동산대책 이후 집값은 하향 안정세가 뚜렷해졌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내수 연관성이 높은 건설경기도 추락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건설수주는 54조225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5조8530억 원)에 비해 18% 급락했다.

매달 부동산 및 임대업(부동산 임대·관리·중개업 및 기계장비 임대업 포함) 활동지수도 작년 동기에 비해 큰 폭의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다.

3분기(7∼9월) 건설업 취업자도 179만 명으로 지난해 7∼9월보다 3만1000명 줄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이후 건설경기 위축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7월 초 ‘건설경기 연착륙 방안’을 내놓기까지 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7.5%이며 전체 취업자 가운데 건설업 부문은 8.2%에 이른다.

▽내수 살리지 못한 통화정책=한국은행은 올해 8월과 11월 콜금리(금융회사 사이의 하루짜리 자금거래 금리)를 0.25%포인트씩 인하했다. 목적은 ‘내수경기 회복’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수경기가 회복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민간소비는 6분기 연속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1.5% 감소(전년 대비)에서 올해 1∼3분기 4.2% 증가세로 돌아섰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朱源) 경기분석팀장은 “저금리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기업의 투자 활성화이지만 설비투자가 뚜렷한 회복세로 돌아섰다고는 할 수 없다”며 “오히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머니마켓펀드(MMF)에 몰리는 등 자금의 단기 부동화(浮動化) 현상만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MMF 잔액은 42조522억 원이었으나 올해 12월 20일 현재 64조3108억 원으로 53% 증가했다.

▽소비업종 ‘정책 날벼락’=자영업자들이 주로 하는 주점과 음식점, 숙박업 등은 내수 부진에다 성매매특별법 접대비실명제 등의 여파로 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음식점업은 올해 들어 10월까지 작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주점업의 10월 매출은 지난해 10월보다 6%가량 감소했다. 올해 1∼9월 유흥업소의 법인카드 사용액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3% 감소했다.

특히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의도의 성매매특별법은 정책 보호대상인 매춘 여성의 ‘생존권 시위’를 불러일으켰으며 접대문화를 개선하겠다는 접대비실명제도 재계의 불만이 되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도 오락가락=민간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아우성이 빗발쳤지만 정부는 ‘5% 성장’을 자신했다.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올해 3월 “별다른 정책을 쓰지 않으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5% 안팎에 머물겠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효과를 내면 6%대 성장도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6월에는 “올해 성장률을 5.3∼5.5%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들어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올해 5% 성장이 어려우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성장률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내자 정부는 “경제 위기를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이 부총리는 “4분기 성장률이 당초 예상대로 나오더라도 5%를 밑돌 가능성이 많아졌다고 판단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부총리의 3월 발언을 감안하면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정부정책 무엇이 문제였나▼

정부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방향성, 현실성, 타이밍, 정책 부작용의 최소화 등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실시한 부동산 안정대책, 접대비 실명제, 성매매특별법 등 대부분의 정책들은 방향성은 옳았지만 나머지 세 부분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남겼다는 게 정책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삼성금융연구소 이상묵(李尙默) 정책연구실장은 “규제적 성격의 정책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며 “이는 규제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원치 않는 행위를 강요당하는 것인데 이들의 반응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정책을 만든 결과”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유병삼(兪炳三) 교수는 “소비가 18개월 동안 마이너스를 보일 정도로 경제 상황이 악화됐음에도 정부는 경제를 오히려 압박하는 정책만 쏟아냈다”고 비판했다.

정부 부처 간의 충분한 논의 없이 부처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인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표적 사례가 성매매특별법, 접대비 실명제 등이다.

정책분석평가사협회 박병식(朴柄植·동국대 행정학과 교수) 부회장은 “정책의 목표가 옳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 국가적 이익이 아니라 부처별 이기주의가 앞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처들이 우선순위를 두고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미국의 경제정책은▼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는 항상 ‘경제대통령’ ‘거시경제의 마술사’ ‘통화정책의 마에스트로(거장)’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린스펀 의장이 이 같은 수식어를 얻은 것은 17년 동안 미국 중앙은행의 수장 자리를 지키며 시의 적절한 통화정책으로 미국경제를 여러 차례의 침체 위기에서 구해냈기 때문이다.

2000년 4월 미국의 증시 버블이 꺼지면서 장기침체의 우려가 높아지자 그린스펀 의장은 13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했다.

소비지향적인 미국인들은 주택모기지(장기 주택담보대출) 금리 부담이 낮아지자 소비에 나섰고 싼 금리에 돈을 빌려 집을 새로 구입하기도 했다.

1994년 미국경제의 연착륙도 그린스펀 의장의 작품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당시 미국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자 FRB는 11월 공개시장위원회에서 연방기금 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 올렸다. FRB가 통상 0.25%포인트씩 올려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파격적인 조치였다.

올 들어 미국경기가 과열 조짐을 보이자 그린스펀 의장은 또다시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FRB는 6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연방기금 금리를 0.25%씩 올렸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시의 적절한 그린스펀 의장의 통화정책 기조가 미국을 지속 발전이 가능한 경제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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