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락]수출업계 “하락속도 너무 빨라” 비명

  • 입력 2004년 11월 15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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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00원 아래로 주저앉자 국내 산업계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다시 짜는 등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부족한 수출 기업이나 중소기업은 벌써부터 생산기지 해외 이전, 인력 구조조정, 한계사업 정리 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손영기(孫榮基)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장은 “급속한 환율 하락으로 정유 철강 항공해운 등 일부 업종은 원자재 가격 하락 및 달러부채 축소로 혜택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나머지 업종은 미처 체질 개선을 할 여유가 없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상 걸린 산업계=삼성그룹은 지난달 초 계열사에 내려 보낸 ‘기준 환율’을 폐기하고 새 기준 환율을 마련해 내년 경영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의 새 기준 환율이 달러당 1000원 안팎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총수출액이 377억달러에 달해 환율이 10% 떨어지면 약 3조7700억원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LG그룹과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내년에 달러당 원화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떨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만들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또 이미 착수한 ‘비상 경영’의 강도도 한층 높일 계획이다.

LG그룹 관계자는 “환율 급락으로 외화부채 축소 등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영업이익에 타격이 불가피해 많은 기업들이 현금 유동성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락 속도 너무 빠르다=한국무역협회가 업종별 대표 수출 기업 392개사를 조사해 1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경쟁국에 비해 수출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53.4%)거나 ‘다소 약화됐다’(42.4%)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달러에 대한 최근의 원화 환율 하락 속도가 경쟁국 화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73.2%는 이미 수출한 물량이 적자로 전환되거나 적자에 직면해 바이어의 신규 주문을 회피하거나 이미 체결한 계약을 취소하는 사태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 중국에 MP3 플레이어를 수출하고 있는 이눅스의 이상윤(李相潤) 경영기획담당 이사는 “수출 경쟁국에 비해 환율 하락 속도가 너무 빨라 내년 상반기 중 환율 1000원 시대가 되면 대다수 수출 중소기업은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회사는 원화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이 되면 마진폭이 12%에 못 미치는 중국과 미국 시장을 사실상 접어야 해 생산기지의 중국 이전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인들의 ‘엄살’이 다소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처럼 원화 환율 급락을 바라보는 국내 기업인들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윤종언(尹鍾彦)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약(弱)달러 추세가 장기화될 전망이지만 국내 산업계에 당장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며 “일본 업체들이 1980년대 후반 달러당 80엔 시대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독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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