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증권집단소송 “한국기업도 안심못한다”

  • 입력 2004년 5월 31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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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한국 기업들이 국제적인 증권집단소송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3월 중국 생명보험사 ‘차이나 라이프’에 대해 미국 투자자들이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한 뒤 미국에서 소송대상이 자국(自國)기업에서 아시아 기업들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미국 로벨스 로펌의 마크 가트리지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미국 증권집단소송제의 비즈니스리스크와 법적 대응전략’ 세미나에서 “미국 투자자들이 해외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전경련과 주한 미국 대사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세미나에는 삼성 LG 한진 대림그룹 등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와 회계사들이 참석했다.

가트리지 변호사는 “현재 유럽과 캐나다 기업들이 주된 목표가 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아시아 기업들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재판관할권도 투자자나 해당 기업의 국적 등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게 인정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 투자자들은 3월 차이나 라이프를 상대로 미국 연방법원 뉴욕 남부지원에 증권집단소송을 냈다. 중국 감사원이 횡령 및 회계상 문제점에 대해 조사에 착수해 부정적인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이나 라이프는 지난해 12월 30억달러(약 3조6000억원)에 이르는 기업공개(IPO) 및 미국 증시에서의 예탁증서 발행에 성공해 주목을 받았던 기업이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는 현재 708개 아시아 기업의 ADR 등이 거래되고 있으며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SK텔레콤 국민은행 현대자동차 KT 등 35개사의 유가증권이 매매되고 있다.

뉴욕 증시에서 거래되는 주요 한국기업들 (자료:뉴욕 ADR뱅크)
기업명기업코드분야발행일
우리금융지주WF은행2003.9.29
신한금융지주SHG은행2003.9.16
두루넷KOREQ기술 서비스2003.4.7
LG전자LGEGN가전 서비스2002.4.24
조흥은행CHBPP은행2002.6.28
INI스틸ISCCGDS철강2002.7.3
한미은행KOOBPRC은행2002.4.30
에쓰오일SOOCY에너지2002.3.1
하이닉스반도체HXSCY반도체2001.6.21
LG화학LGCLYPC화학2001.4.12
KT&GKTCIY담배2001.10.31
하나로통신HANA통신2000.3.30
현대차HYRPP자동차1999.9.22
KTKTC통신1999.5.26
삼성전자SAMPEZ반도체1997.6.2
SK텔레콤SKM무선통신1996.7.2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주식예탁증서(DR):기업이 해외에서 직접 주식을 매매하는 어려움을 덜기 위해 증권예탁원이 원주권(原株券)을 맡겨 놓고 이를 대신하여 발행, 유통시키는 주식대체증서. 미국시장에서 발행하는 ADR, 유럽시장에서 발행하는 유럽 주식예탁증서(EDR), 해외 여러 시장에서 동시에 발행하는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등이 있다.

▼美 증권 집단소송 실태

한번 걸리면 수천억원대 ‘휘청’

한국 기업도 국제 증권집단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면서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은 일단 걸리면 수천억원대 법정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데다 소송이 벌어지는 동안 기업 이미지나 주가 등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미국의 증권집단소송 전문 로펌들이 한국 등 아시아 기업들의 불법행위를 대상으로 투자자들에게 소송을 적극 권유하고 있는 점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미국 법원은 소송 대상 기업의 국적은 물론 피해를 본 투자자의 국적에 상관없이 증권집단소송을 인정하는 추세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이 미국 해외투자 설명회에서 투자를 권하고 이 과정에서 외국인이 주식을 샀다면 분식회계 등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미국 법원에 증권집단소송을 낼 수 있다.

한국에서 벌어진 불법행위가 미국에서 유통되는 그 기업 주식의 주가에 나쁜 영향을 줬다는 점이 인정되면 역시 미국 법원에 소송이 가능하다.

최근 프랑스 투자자들은 자국(自國)기업인 비방디 유니버셜의 회계분식 건에 대해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가 된 기업의 회계분식이 미국에 있는 자(子)회사에서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캐나다 통신장비업체인 노텔도 네덜란드 연금기금이 미국 법원에 제기한 증권집단소송으로 고심하고 있다. 로웰 로펌의 마크 가트리지 변호사는 “미국의 증권집단소송 전문 변호사들이 외국의 연기금 등 ‘큰손’ 투자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미국에 소송을 내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엄청난 소송규모=문제는 미국의 증권집단소송 규모가 워낙 엄청나기 때문에 일단 걸리고 나면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호텔 관련 업체인 센던트는 분식회계 관련 집단소송 합의금으로 무려 28억5000만 달러를 지불했다. 또 이 회사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 ‘언스트 앤드 영’은 따로 3억3500만달러를 내야 했다.

씨티그룹은 작년 전 세계 금융가를 뒤흔들었던 월드컴 분식회계 사건에 연루돼 지난달 합의금으로 26억5000만달러를 물어줬다. 씨티그룹 외에 공동 피고로 올라와 있는 다른 기업들도 합의에 이를 경우 합의금 액수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무감각=한국 기업들이 해외 법정에서 집단소송에 걸린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주식예탁증서(DR)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2002년 미국의 법규 개정(서베인스 옥슬리 법)으로 소송을 낼 수 있는 시효가 늘어난 점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시효는 위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 위법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1년이었으나 이것이 각각 5년, 2년으로 늘어났다. 트리지 변호사는 “분식회계 등의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미국과 한국 기업의 회계기준이나 주식발행 절차의 차이점 등을 잘 몰라 벌어진 위법행위나 불성실 공시 등도 집단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조&브런스틴’ 로펌의 마이클 리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기업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계 관련 법규가 강화되는 추세”라며 “이 기준이 한국기업에 언제 어떻게 적용될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소송연구회 전삼현 회장(숭실대교수·법학)은 “한국기업들은 내년부터 실시될 국내 증권집단소송 대응에도 미온적이다”며 “특히 국제 소송의 경우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대가는 상상 외로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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