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 과연 걱정없는 수준인가

  • 입력 2004년 5월 28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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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만 호조, 투자와 소비는 극도의 부진’으로 요약되는 한국 경제의 고민이 좀처럼 해소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 2.3%(연간 기준) 감소했던 설비투자가 올해 들어서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제 자본이 ‘파업’을 한다?=올해 1·4분기(1∼3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81.5%. 분기별 제조업 가동률로는 9년 만에 최고치였다. 4월 제조업 평균가동률도 80.5%로 80%를 웃돌았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1·4분기 설비투자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8% 감소했고 4월에도 2.5% 줄었다. 가동률이 높은데도 기업이 투자에 나서지 않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제 노동이 아닌 자본이 본격적인 ‘파업’에 나섰다”는 말도 나온다.

▽열리지 않는 소비자 지갑=4월 산업생산은 3개월째 두 자릿수의 높은 증가세를 나타냈지만 소비는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용 출하는 21.9%나 늘어 연 3개월째 20%대의 초호황을 누린 반면 내수 출하는 3.6%가 늘었을 뿐이다. 특히 자동차 냉장고 등 내구소비재 출하는 6.7% 줄었다. 고용불안과 가계부채 급증으로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우리 사회에 적지 않게 확산된 부유층에 대한 반감 때문에 고소득층도 소비를 주저하고 있다.

▽갈수록 떨어지는 성장잠재력=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최근 잇따라 ‘경제위기를 부추기는 세력’을 거론하며 경제위기는 없다고 주장했다.

경제위기와 관련해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외환보유액이 1600억달러를 넘어섰고 올 들어 수출이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면서 흑자 규모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갈수록 추락하는 성장잠재력과 멍들고 있는 가계경제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적인 설비투자액은 8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실질 설비투자액은 71조4359억원으로 2002년의 72조5564억원보다 1조1205억원 줄어 95년의 71조2260억원과 거의 같았다.

따라서 현재 80%를 넘는 가동률도 기업들이 그동안 설비투자를 하지 않은 데 따른 착시(錯視) 현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춘욱(洪椿旭)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신용거품이 꺼지고 내수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중산층과 저소득층 등 가계경제가 멍들어 있다는 점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런 불안심리를 풀지 못하면 일본식 복합 불황으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노 대통령이 27일 연세대 강연에서 주장한 “(위기론이 나오면) 이 정책 저 정책 다 갖다 쓰고, 경제파탄으로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89년 위기론에서 90년 진짜 위기가 왔고, 2001년 위기에서 무리한 정책이 나오고 2002년 진짜 위기가 왔다”는 발언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 대통령은 ‘위기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90년은 경제가 9.0% 성장하면서 일자리가 52만5000개 늘었다. 또 2002년은 7.0% 성장하면서 일자리가 59만7000개 늘었다. 반면 지난해는 경제성장률이 3.1%에 그쳤고 일자리는 3만개 줄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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