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가 무너진다]<2>자금조달 ‘별따기’

  • 입력 2004년 5월 24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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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열린 전국중소기업인대회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신일프레임 노상철(盧相澈) 사장은 외환위기 당시 부도 직전까지 몰린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거래은행이 담보가 부족하다며 다짜고짜 대출금 2억원을 회수해 위기를 맞았어요. 맑은 날에는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 오자 빼앗는 격이죠.”

그는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구하려면 은행이 담보대출 관행을 버리고 신용 및 리스크 관리를 잘 하면서 유망기업을 골라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흔히 은행과 기업을 상생(相生)관계라고 하지만 최근처럼 경기가 나쁘고 경영환경이 좋지 않을 때는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들이 늘면서 기업을 상대하는 기업금융 지점장과 심사역의 마음도 편치 않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의 중소기업 200여개가 고객인 국민은행 김지섭(金址燮) 디지털밸리 기업금융지점장은 최근 더 자주 업체를 찾는다.

“경기가 나쁘면 정말 일하기 힘듭니다. 도와주고 싶은 회사는 은행이 정한 신용등급 기준에 걸리고 신용등급이 좋아도 1, 2년 뒤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일 김 지점장과 함께 방문한 골프의류업체 아이아스는 첫 번째 경우. 이 업체는 외국 유명 상표에 맞서 자체 브랜드를 4년 동안 지켜온 중견기업이다.

2001년 30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52억원으로 늘었다. 가격을 낮추고 유명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올 1·4분기(1∼3월)에만 3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100여명인 직원의 인건비는 지난해보다 30% 정도 올랐고 원단값도 15% 이상 상승했다. 이 때문에 매출이 늘어도 이윤폭은 줄어들고 있다.

김 지점장은 “이 회사는 가을상품을 만들기 위해 운영자금이 필요한데 신용등급 때문에 신규 대출이 가능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19일 서울 중랑구에 있는 준별FRP산업 사무실.

이 회사 남궁석(南宮碩) 전무는 하나은행 신보성(愼寶晟) 강북기업센터 지점장이 신용을 조사하기 위해 묻는 질문에 답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맨홀로 불리는 밸브실과 교량 기초 우물통을 제조하는 이 회사는 특허를 13개나 갖고 있다. 조달청이 발주한 신림동 빗물펌프장 신축공사에 참여하는 협상이 막바지 단계다.

대출 목적은 이 공사에 쓰일 원자재 비용 4억원을 마련하는 것. 과거에는 외상거래가 대부분이었지만 철강값이 오르면서 현찰을 주지 않고는 물건을 만져볼 수 없게 됐다.

20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의 중소기업여신팀 회의실. 심사역 5명이 두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문제로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강철파이프 제조업체는 성장성을 인정받아 기존 대출금의 분할상환 조건이 완화됐다. 그러나 육(肉)가공업체는 운전자금 5억원 대출 신청이 기각됐다.

이홍현(李弘鉉) 우리은행 선임심사역은 “육가공업체가 대출받은 운전자금을 모두 시설투자에 써 당분간 자금경색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관리를 강화하면서 중소기업의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4월 말 현재 8개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49조784억원.

중소기업청은 3월 중소기업 자금지수는 전달보다 4.9포인트 하락했다고 24일 밝혔다.

국민 우리 하나 등 은행들은 미래가 밝은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해 꼭 살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장래가 불확실한 기업들은 고금리의 사채까지 쓰다 부도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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