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고공행진]배럴당 40달러 육박…경제 비상등

  • 입력 2004년 3월 2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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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원유값이 잇단 돌발 변수로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급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대형악재가 터져 나오면서 지금과 같은 고유가 추이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미약하나마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24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3일 국제유가는 유종(油種)에 상관없이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중동산 두바이유는 전날보다 0.08달러 오른 배럴당 31.36달러로 40개월 만에 최고치였던 18일(31.59달러)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미국 서부텍사스 중질유(WTI)도 0.39달러상승한 37.62달러로 나흘 만에 반등했으며 북해산 브렌트유도 0.72달러 급등한 34.26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쌓이는 악재=이날 유가 상승은 중동 정세 불안에서 촉발됐다.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최대 저항운동 단체인 하마스의 창설자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아메드 야신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하자 중동지역이 또다시 전운에 휩싸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1974년 1차 오일쇼크에서도 나타났듯 중동분쟁이 이스라엘 등 친미계 국가에 대한 아랍권의 석유 금수(禁輸)라는 극단적 형태로 나타날 경우 유가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전략비축유(SPR)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미 오클라호마주 툴사 정유공장의 화재 소식도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국제 유가는 2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발표 이후 고공행진을 거듭하다 △미국에 대한 베네수엘라의 석유수출 제한 경고 △에콰도르 송유관 파손 △스페인 테러 등 돌발 악재가 쏟아지면서 지난주 한때 13년5개월만에 최고치(WTI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급등했다.

이후 안정세를 찾아가는 모습이었지만 중동 문제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달 들어 23일까지 WTI 평균가격은 배럴당 36.94달러. 2003년 평균(31.11달러)보다는 18.7%, 2002년(26.09달러)과 비교하면 무려 41.5%나 높다. 두바이유도 2003년보다는 15.0%, 2002년 대비 29.4%나 높다.

▽고유가 피해 갈수록 확산=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과 소비심리 위축, 생산 저하 등으로 이어진다. 특히 한국은 해외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여서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여파가 더 큰 편이다.

한국석유공사가 전국 556개 주유소를 조사한 결과 3월 셋째주 서울지역 휘발유 값은 L당 1404.33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400원대를 돌파한 한 주일 전보다 0.67원 더 올랐다.

원유값이 뛰면서 각종 석유제품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 2월 석유화학산업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수입가 총액은 8억86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5.3%나 늘었다. 나일론 원료인 카프로락탐도 지난해 t당 1164달러에서 최근 1340달러에 이른다.

이에 따라 효성과 코오롱 등 화섬업계는 일제히 직물업체에 대한 납품가격을 높였다. 항공사들도 수익성이 낮은 노선 운항을 줄이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유가 상승은 특히 세계 각국의 소비 감소로 이어져 한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을 위협하고 있다.

국제투자회사인 메릴린치에 따르면 휘발유값이 0.1달러 오를 때마다 미국의 소비자 지출이 10억달러씩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와 관련해 23일 미국 민간 자동차서비스업체인 ‘트리플A’는 미국의 휘발유 평균가격이 갤런(3.8L)당 1.738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OPEC 회의가 분수령=전문가들은 유가가 큰 폭의 추가 상승을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4분기(4∼6월)부터는 비수기에 들어가는 데다 하반기부터는 이라크에서 하루에 최고 250만배럴의 원유가 추가 공급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동지역의 정정(政情) 불안이 계속되고 이달 말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총회에서 추가 감산이 단행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구자권(具滋權) 해외조사팀장은 “앞으로 남은 변수는 OPEC 총회에서 나올 정책”이라며 “지금으로선 추가 감산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올해 2월 총회에서 보듯 예상을 뒤엎는 감산 가능성도 있는 만큼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지만 OPEC가 기존 감산안을 지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다면 유가는 큰 폭은 아니지만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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