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근/'우리나라의 정직은 다릅니다'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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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대선자금 수사 때문에 재벌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 나가는 광경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불법자금의 이면에는 언제나 분식회계라는 범법행위가 수반되게 마련인데, 이는 단순한 윤리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세계화나 글로벌 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국가적 대외신인도 제고라는 측면에서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투명성이 담보되고 나서야 비로소 신용사회의 기초가 닦일 것이고 그래야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논리보다 ‘感’ 중시해온 문화 ▼

그렇다면 투명성은 기업들만의 책임인가? 여기에는 기업인들의 몰지각과 부도덕으로만 몰고 갈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속된 말로 나무가 조용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어디 그냥 놔두는가 말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라는 것이다.

무의식은 모국어의 구조대로 짜여진다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문화의 구조와 속성은 사용 언어의 그것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의 언어는 서양 언어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논리적이고 불투명하다. 서양 언어처럼 단어의 성별이나 수, 시제 등을 철저히 일치시켜야 하는 논리적인 규범이 없을뿐더러 주어가 없이도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는 논리 이전에 감성으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장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심지어는 끝난 후조차도 화자의 말하려는 의도가 계속 유보될 수 있다. 이런 우리의 언어 관습은 좀 과장해 말한다면 무엇인가를 항상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우리말의 속성을 닮아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규정짓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 왔다. 우리 안의 이중성은 어쩌면 이러한 문화에서 배태된 것인지도 모른다. 상호 투명하지 않은 사회적 관계에서 내 속을 다 보여주면서 홀로 투명하게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으로 명쾌하지 않은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서 볼 때 분명 낙후된 국가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문화가 부정적인 면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감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논리성은 떨어지지만 이른바 ‘감’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매우 탁월하다. 이것을 융통성과 적응력이라고 부르는데, 기실 이것이 그간 우리 경쟁력의 본질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고기도 어종에 따라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 다르다. 열목어는 투명한 1급수에서만 살 수 있고 잉어는 숨을 곳을 제공해 주는 흐린 물에서 잘 자란다. 우리의 기업 토양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선진국들이 요구하는 회계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누구만 좋겠느냐는, 사석에서 만난 어느 회계학자의 탄식은 이를 더욱 실감케 한다.

아비를 고발한 아들을 정직하다고 칭찬하는 섭공(葉公)에게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의 정직은 다릅니다. 아비는 아들을 위해 숨기고 아들은 아비를 위해 숨깁니다. 정직은 그 사이에 있는 것이지요.”

서양 윤리에서는 범죄는 혈육을 막론하고 무조건 고발해야 하지만 우리는 부자간에는 숨겨주는 게 미덕이다. 어디까지 감출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복잡하게 얽힌 현대에서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되겠지만, 우리는 새로운 질서의 수립이나 적용 이전에 유기체가 갖는 각각의 독특한 생명 메커니즘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와 관찰이 선행돼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 ‘혼돈 속 질서찾기’ 새로운 과제 ▼

물론 그 어떤 명분과 관습도 ‘불법적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것은 반드시 처벌돼야 하며, 또한 경계의 끈을 잠시라도 늦춰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기회에 정책 입안자들은 문화라는 차원에서 우리의 생존 메커니즘을 한번쯤은 돌아보기 바란다. 누구를 위한 투명성인가, 무엇을 위한 투명성인가라고 말이다.

‘장자’에 이런 우화가 있다. “혼돈(混沌)에 숨을 쉬라고 7개의 구멍을 내었더니 죽어버렸다.”

김근 서강대 교수·중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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