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특검' 충돌]벼랑끝 한나라 “與野 다 밝히자”

  • 입력 2003년 10월 27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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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산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27일 SK비자금 100억원의 한나라당 유입 파문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후 여야 대선자금에 대한 ‘전면 특검’이라는 배수진(背水陣)을 친 속내를 이처럼 내비쳤다.

최 대표가 전면 특검이라는 초강수를 던진 데는 무엇보다 SK비자금 유입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에 집중되고 있는 국민적 비판여론을 정치권 전반의 ‘검은 돈’ 문제로 물꼬를 돌려 피해야만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실제 비자금 수사가 한나라당을 ‘부패집단’으로 몰아 내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입지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측의 ‘기획된 음모’라는 게 한나라당측의 시각이다.

또 특검 수사가 가시화할 경우 대여 공세를 위한 ‘의외의 호재(好材)’가 터져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당내에선 없지 않다. 여야 대선자금 전면 특검 카드가 ‘양날의 칼’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에서 “정국 호도용”이라고 반발하는 것도 현재는 한나라당에 집중되고 있는 비판여론이 특검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현 여권으로도 칼끝이 향해질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권과의 전면전까지 감수하겠다는 최 대표의 승부수에는 당내 역학구도 재편까지 염두에 둔 원모심려(遠謀心慮)가 깔려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당직자 전원이 일괄사표를 제출하는 등 당을 비상체제로 전환함으로써 당내 갈등을 잠재우고 나아가 최 대표의 리더십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SK비자금 수사가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 주변으로 옮겨갈 경우 당내 영향력이 엄존하고 있는 이 전 총재 세력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그럴 경우 상대적으로 최 대표 진영의 세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던진 특검법안의 국회 처리 전망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최 대표는 ‘10월 하순 법안처리→11월 하순 특검수사 착수→2월초 특검 매듭’라는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다른 당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의석(149석)을 확보하고 있어 물리적으로 단독 표결 처리의 길은 열려있지만 민주당과 열린 우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회의 처리를 강행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자칫 “정치권 합의”를 내세운 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의 빌미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특검법안의 강행처리 쪽보다는 민주당과 자민련을 우군화하는 작업에 일단 전념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이날 민주당으로부터 국회 예결위원장직을 탈환하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도 이 같은 구애(求愛)전략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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