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오를때 아파트값 내렸다…‘逆상관관계’ 입증

  • 입력 2003년 10월 14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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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를 꺾는 데 금리 인상이 적절한 정책 수단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금리를 올려 부동산 시장에 몰려 있는 부동(浮動)자금의 규모를 줄이지 않는 한 ‘풍선 효과’(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현상)를 막기 어려워 투기를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금리 인상은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할 우려가 있다”며 주저하고 있다.

어느 말이 맞을까?

90년대 말 이후 금리와 설비투자 및 아파트 값의 실제 움직임을 살펴보면 금리와 아파트 값 사이에는 한쪽이 오르면 다른 쪽은 떨어지는 역(逆) 상관관계가 매우 뚜렷하다. 반면, 기업과 설비투자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즉 금리를 올려도 투자가 더 위축될 것이라는 근거가 희박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금리 인상을 꺼리는 것은 경기 회복 지연에 대한 우려보다는 신용불량자 양산 같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부작용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같은 맥락에서 점진적인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투기열을 식히고 신용불량이나 가계파산 문제는 선별적인 신용 지원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금리와 기업 설비투자는 무관=‘금리를 올리면 기업의 투자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설비투자가 줄어든다’는 게 지금까지의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이런 관계가 잘 관측되지 않는다. 금리는 오르는데 투자가 늘거나 금리를 떨어뜨려도 투자는 꿈쩍하지 않는 현상이 자주 발견된다.

피데스투자자문 김한진 상무는 “외환위기 이후 주요 기업들이 국내 은행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회사 안에 쌓아 둔 현금이나 증시에서 증자(增資)를 통한 자금 조달, 해외시장에서의 채권 발행 등의 비중을 높이면서 설비투자와 국내 금리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외환위기 이후 금리와 소비지출 사이에도 일정한 관련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계 자산에서 주식 채권 등 금리에 따라 값어치가 변하는 투자 자산의 비중이 여전히 낮아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한국에서는 아직 통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와 아파트 값은 반비례=1987년 이후의 통계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금리가 오르면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관계가 뚜렷이 나타난다. 특히 실제금리와 적정금리의 차(差)로 정의되는 ‘금리 갭’과 아파트 값 사이의 역 상관관계는 놀라울 정도다. 여기서 적정금리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수치로, 가계가 은행에 예금을 하거나 기업이 설비투자를 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잠재수익률을 말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금리 갭과 아파트 값의 반비례 관계는, 이를테면 실제 금리가 적정금리를 훨씬 밑돌 경우 예금이나 투자자금이 아파트 등 부동산 투자로 옮아간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대책으로서 점진적 금리 인상=금리가 투자나 소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대신 아파트 값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면, 금리 인상은 실물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부동산 해법이 될 수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금리 카드를 꺼내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금리 인상으로 인한 신용불량과 가계파산의 급증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총선과 대통령 재신임 투표가 임박한 마당에 금리를 올려 ‘신용파산자 한 달 만에 10만명 급증’ 식의 보도가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풀이다.

이와 관련해 한은의 한 관계자는 점진적 금리 인상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구두 경고로 시작해 주택시장 상황을 봐 가면서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되 현재의 수요 억제 위주의 주택 정책을 주택 수급의 불균형을 줄이는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우려하는 신용불량, 가계파산 등의 부작용은 금리 차등 적용 등의 방법으로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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