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쇼크 비명속에 정유-항공-식음료 "숨어서 웃는다"

  • 입력 2003년 9월 23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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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짚신장수는 울지만 우산장수가 웃는 법.

원-달러 환율이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많은 업체들이 비명을 지르지만 뒤에서 웃고 있는 업체도 많다.

원자재를 수입 가공해 국내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내수업종이 최대 수혜기업. 정유, 항공, 식음료, 주류, 제지, 목재업체 등이 대표적인 업종이다. 특히 정유업계와 항공사는 최근 유가가 배럴당 25달러 선으로 안정되면서 원유 수입 비용이 이중으로 떨어지는 효과를 얻고 있다.

정유업계가 지난해 도입한 원유는 180억달러어치. 원-달러 환율이 5% 떨어지고 원유 도입가격이 10%만 떨어져도 27억달러의 비용 감소 효과가 발생한다.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 등 계열사 부실로 인한 대손충당금과 지분법 평가손 때문에 이익이 크게 줄어든 SK㈜는 달러화 약세로 한숨 돌리는 분위기.

원재료를 90% 이상 수입하는 CJ는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연간 약 40억원의 추가이익을 얻는다. 배경열 기획부장은 “달러화가 계속 약세를 보이면 내년에는 제품 값을 낮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운, 항공, 정유 등 달러표시 부채가 많은 업체들도 달러화 약세를 반긴다. 부채나 이자를 갚기 위해 원화를 달러로 바꿀 때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

달러표시 부채가 48억달러인 대한항공은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경상이익이 476억원가량 늘어난다. 달러 부채가 10억달러인 아시아나항공은 경상이익이 159억원 증가한다. 항공업계는 원유 가격도 안정돼 올해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고가 의료장비를 리스로 해외에서 들여온 의료업계도 원화 강세를 즐기는 분위기. 사스 여파로 상반기에 곤욕을 치른 여행업계도 달러 값이 싸지면서 해외 여행객 수요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출업체라고 모두 울상을 짓는 것은 아니다.

주로 일본 유럽업체들과 경쟁하는 업체들은 경쟁업체들이 가격을 함께 올릴 것으로 보여 수익성 측면에서 큰 영향이 없다.

해운, 철강, 석유화학 업계가 대표적인 업종. 특히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이 심한 철강이나 해운업체들은 엔화의 절상 폭이 원화보다 크기 때문에 경쟁력이나 수익성 측면에서도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해운업종은 외화표시 부채도 많고 해운업 경기가 좋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하락을 환영하는 분위기. 현대상선 관계자는 “올해 국내 해운업계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최근 유럽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자동차업계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반응.

현대 및 기아차는 올 들어 유럽지역 수출이 늘어나면서 환 리스크가 일정 부분 상쇄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GM대우는 아직까지 미국 수출 물량이 많지 않아 이번 원-달러 환율 하락의 직격탄을 피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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