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힘든 나라]<4>기업과 사회는 운명공동체

  • 입력 2003년 8월 20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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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경남 사천공항에 다가서면 사천만(灣)과 와룡산을 끼고 너른 평지가 눈에 들어온다. 평지 곳곳에 반듯하게 솟은 건물이 바둑판처럼 보인다.

파란 지붕은 ‘던힐’ 담배로 유명한 BAT코리아 공장이다. 바로 옆 현대식 건물은 한국항공우주산업. 한국경남태양유전(일본), 스카니아코리아(스웨덴), EEW성화산업(독일) 등 외국투자기업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진사지방산업단지다.

이남근(李南槿) 사천시 지역경제과 투자유치팀장은 “기업이 사천의 미래”라고 말했다.

기업과 지역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퍼지면서 기업, 근로자, 주민 등이 함께 하는 행사가 늘고 있다. 행사 내용도 음악회 마라톤 이웃돕기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사진제공 대우조선해양

그는 또 사천의 투자유치 성공비결을 “기업과 지역사회가 운명공동체라는 ‘마인드’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관련기사▼

- <3>제대로 된 기업교육이 없다
- <2>反기업 정서 왜 생겼나
- <1>한국 땅 떠나는 기업들

잇따른 외국기업유치로 사천 시민의 1인당 소득은 2000년 7900달러에서 올해 1만1000달러를 바라본다. 농어업 중심의 소도시였으나 ‘첨단기업과 자연이 어우러진 미래도시’를 꿈꾸고 있다. 》

사천과 비슷한 도시는 적지 않다. 거제 울산 창원 포항 광양…. 모두 기업과 지역의 공동 운명 의식이 뚜렷한 곳이다.

김화순(金和洵) 거제시 지역경제과장은 “한 지역에서 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듯 국가 전체와 재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안재욱(安在旭) 경희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인류가 생존하는 한 생산은 멈출 수 없으며 자본주의체제에서는 기업이 생산주체가 돼 공동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기업 운명이 사회의 운명=인천 부평구의 대우인천자동차(옛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주변은 요즘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옛 삼익악기 공장 터에는 12층짜리 대형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대우자동차 공장이 정상화되면서 중소 업체들이 새로 입주할 곳이다.

김기용(金基容) 부평구 기업지원팀장은 “대우차 정상화를 계기로 부평4공단 공장들이 고층 아파트형 공장으로 리모델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부평관광호텔은 개보수 공사가 한창이고 주변 상인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2년 전 대우차 부평공장이 1725명을 대거 해고할 때와는 딴판이다. 대우차 남문 앞 가나안왕갈비 강상훈 사장은 “2001년 대우차 몰락으로 문을 닫는 음식점이 줄을 이었고 심지어 유치원 원생도 줄었다”고 회고했다.

부평구 청천동 부동산써브 금호점 김선미 실장은 “당시 아파트 값이 20%나 폭락했다. 대우가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잘 돼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덧붙였다.

최창규(崔昌奎)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하기 좋은 여건이 지역의 경쟁력이며 이 경쟁에서 국경은 없다”고 말했다.

기업과 함께 지역의 고용과 소득이 늘어난 지자체는 △행정서비스 확대 △세제 지원 △규제 완화 △사회간접시설 확충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주민들이 ‘기업 도우미’를 자청하기도 한다.

창원상공회의소 이종대(李宗大) 사무국장은 “지자체와 주민이 더 나은 기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창원의 재정자립도가 전국 7위에 올랐다”고 말했다.

▽기업의 길, 정부의 길=모 대학의 경영전략론 강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토론식 수업이었고 교수가 문제를 제시했다.

“여러분이 경영자라 가정하고 대답하라. A사업을 하면 기업에 10의 이익을, 사회에 5의 이익을 각각 준다. B사업은 기업에 20의 이익을 주지만 환경문제를 일으켜 사회에 15의 피해를 준다. 당신은 A, B중 어느 사업을 선택하겠는가.”

70%가량의 학생이 선한 사업 A를 골랐고 30%는 B를 선택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에 대해 1시간 내내 격론이 벌어졌다. 결론은 이렇게 났다.

“평균적인 기업에 대해 선의(善意)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 B를 선택하는 기업이 많다고 봐야 한다. ‘이런 부조리한 선택안이 존재하는 시스템’이 문제다. 환경부담금 제도 등을 신설해 B사업을 선택한 기업이 15의 피해를 스스로 부담토록 만들어야 한다. 외부불경제 효과를 내재(內在)화하는 것이다. 기업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기업은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적극적으로 사회봉사를 하는 기업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장 이언오(李彦五) 상무는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곧 기업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봉사나 기여를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포스코는 1972년 포항으로 본사를 옮긴 이래 투자한 사회공헌 활동비가 모두 1조6342억원에 이른다.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은 연간 지역 사회에 171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연간 거제시에 내는 세금보다 많은 규모다. 인천지역 최대 기업으로 꼽히는 INI스틸(옛 인천제철)에는 ‘다물단’이 구성돼 있다. 현장 근로자로 구성된 이웃사랑 동호회로 99년부터 휴일만 되면 망치와 톱, 장판 등을 들고 지역 독거노인 집 고치기에 나선다. 최근까지 200여 집을 수리해줬다.

제일모직은 이달 초 이익을 지역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옛 대구사업장 터에 ‘대구 오페라하우스’를 지어 대구시에 기증했다. 지역과 기업을 잇는 가장 좋은 연결 고리로 문화를 선택한 것. 경기 과천시에 본사를 둔 코오롱도 사옥 앞마당을 문화예술 무대로 꾸며 매주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공연을 갖고 있다.

물론 부담이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안재욱 교수는 “기업의 사회기여는 바람직하지만 지역사회가 기업에 지나친 요구를 하면 그 부담이 주민에게 돌아간다”며 “기업의 기본은 고용과 이윤 창출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천,부평=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도시 이름까지 바꿔버린 '도요타'▼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일본의 옛도시 나고야(名古屋)에서 동북쪽으로 30km 떨어진 아이치(愛知)현 도요타(豊田)시에 본사와 생산공장이 있다. 도요타시를 중심으로 조립공장과 부품공장 등 12개 공장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도요타는 생산대수 면에서 세계 3위의 자동차 메이커다. 품질과 생산 효율성은 세계 선두를 다툰다.

퀴즈 하나.

‘도요타시와 도요타자동차는 왜 같은 이름을 쓸까? ①도요타시에 있기 때문에 회사이름을 도요타로 지었다 ②도요타자동차 때문에 시를 도요타시라고 부르게 됐다’

놀랍게도 정답은 ②다. 전말은 이렇다.

도요타시의 원래 지명은 고로모(學母)다. 도요타는 원래 방직회사로 출발했다. 창업자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는 성능 좋은 직기(織機)를 발명해 직물대국 일본의 기반을 닦았다. 그 뒤를 이어 경영을 맡은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는 미국과 유럽을 둘러보면서 자동차에 매료된다. 그는 33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최신형 시보레 한 대를 구입해 부품 하나하나를 뜯어내고 베끼기 시작한다. 2년이 채 가기 전에 승용차 시제품을 만들었다. 도요타는 36년 ‘AA세단’을 발표했다. 도요타의 첫 승용차다.

이 무렵 고로모는 주업이던 양잠과 제사업(製絲業)이 쇠퇴하면서 마을 전체가 깊은 시름에 빠졌다. 촌장 등 마을유지는 당시 자동차공장터를 물색하던 도요타를 찾아가 고로모에 공장을 세워줄 것을 요청한다. 넓은 공장터에다 값싼 노동력을 구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고로모는 결국 도요타 유치에 성공한다. 도요타는 38년 매달 승용차 500대, 트럭 1500대를 생산하는 고로모 공장을 준공한다.

이후 한국전쟁을 계기로 트럭 수요가 크게 일어나면서 도요타는 공장을 잇따라 증설했다. 고로모도 함께 발전한다. 고로모는 마침내 59년 이름을 도요타시로 아예 바꿔버렸다.

공장 수도 꾸준히 늘어나 현재 12개에 이르렀고 절반이 넘는 7개 공장이 도요타 시내에 자리잡고 있다. 도요타가 들어서기 전 5만여 명에 머물던 인구는 자동차부품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최근엔 35만명으로 늘어났다. 도요타시 주변에는 자동차부품 등 관련 기업만 무려 4만9000여개에 이른다. 도요타시의 제조업 출하액은 도쿄에 이어 2위다.

도요타 종사자가 도요타 시민의 10%이며 가족까지 합치면 24%나 된다. 협력업체 근로자를 포함하면 더 많다. 도요타시의 피고용자는 두 사람에 한 명꼴로 자동차 관련 업종에 종사한다. 도요타는 또 종업원을 아끼는 종업원 중심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50년간 노사분규가 없었다.

60년대 한때 도요타가 전기요금이 할인되는 일요일에 근무하고 평일에 쉬기로 방침을 정하자 도요타 시청은 물론 시민과 협력업체들도 도요타의 근무체제를 따라갔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있다. 현지에서 만난 도요타 시민들은 “품질과 서비스는 물론 회사 자체를 신뢰한다”고 말했다.

도요타 기업PR담당 가와모토 신이치는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도시와 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였다.

도요타=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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