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회장 자살 충격]경영난-비자금수사로 사면초가

  • 입력 2003년 8월 4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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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또 하필이면 4일 새벽 집무실에서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삶을 마감했을까.

▽정 회장을 압박했던 문제들=정 회장은 자필로 쓴 유서를 남겼다. 그러나 유서에는 자살의 정확한 이유와 동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 회장 주변에서는 우선 대북송금 사건과 최근 150억원 비자금조성에 대한 검찰의 추가수사 등 지난 1년 동안 당사자로선 ‘괴로운 사건’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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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사면초가에 몰린 현대그룹의 사정도 그에게는 정신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은 대북사업 지급보증 때문에 신음하다 지난해 ‘알짜 사업’인 자동차 운반사업 부문을 매각해야 했다. 현대아산도 금강산 관광이라는 역사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사업적으로는 누적적자가 2803억원에 이르는 등 재무위기에 몰렸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개성공단 착공식을 갖는 등 대북사업을 계속 진행해왔다. 그러나 북-미관계는 여전히 경색상태여서 사업 전망이 밝지는 않아 보였다.

▽정 회장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법심리학회 초대회장을 지낸 강지원(姜智遠) 변호사는 “보통 자살은 자신의 욕구가 벽에 부닥치면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감을 경험할 때 단행하게 된다”며 “정 회장은 남북관계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전력을 기울여온 경협사업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극단적인 절망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법통을 이어받은 후계자로서 대북사업을 해왔는데 부친이 심혈을 기울여 진행해온 대북사업마저 특검수사 등으로 관련자들이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상당한 죄책감과 압박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예측 못한 정 회장의 죽음=통상 자살에 내몰린 사람은 자살 직전까지 주변사람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 등으로 자신의 고뇌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며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통설.

그러나 이날 현대그룹 관계자들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은 “전혀 뜻밖의 일”이라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은 개성공단 조성사업 때문에 지난달에도 미국과 일본 출장을 직접 다녀오는 등 대북 사업에 의욕을 보였다”면서 “어쩌다가 이런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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