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상무보급 30명 MBA 교육현장

  • 입력 2003년 6월 11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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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한 ‘임원 학생’이 서울대 경영대가 개설한 ‘단축 MBA’ 수업 시간에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팀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발표를 준비하느라 학생들은 전날 밤을 꼬박 새웠다고 한다. 사진제공 대한항공
대한항공의 한 ‘임원 학생’이 서울대 경영대가 개설한 ‘단축 MBA’ 수업 시간에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팀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발표를 준비하느라 학생들은 전날 밤을 꼬박 새웠다고 한다. 사진제공 대한항공
10일 오후 서울대 경영대 LG경영관.

기자가 교실에 들어갔을 때 ‘C’그룹의 팀 프로젝트 발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발표 내용은 ‘미디어그룹 베텔스만의 온라인 진출전략’. 발표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동료 학생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기존 오프라인 조직과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지요?”

“소매상 반발에 대한 대책은?”

“오프라인 회사가 사내 문화의 변화 없이 온라인 사업에 진출하면 위험하지 않나요?”

서울대 학생들의 수업이 아니다. 40대 후반∼50대 초반의 대한항공 임원 30명이 학생이다.

▽‘서울대의 공부벌레들’=질의응답이 끊어질 줄 모르자 강의를 맡은 연세대 경영학과 송재용 교수가 “이제 질문은 이 정도로 마치지요”라고 제지했다.

대한항공은 30명에 이르는 상무보급 임원 전원을 ‘업무정지’시킨 뒤 ‘압축 MBA’ 과정에 보냈다. 지난달 6일 시작했으니 한 달쯤 됐다. 기간은 4개월.

팀 발표가 있는 날은 모든 팀원이 2, 3시간만 눈을 붙인 뒤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발표를 준비한다는 것이 ‘반장’인 박무화 상무의 말. 그래야 동료 학생들의 질문공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있다.

수업시간에 졸지 않기, 수업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하기는 이들에게 기본. 책임교수인 서울대 경영학과 박원우 교수는 “오전 2시에 e메일로 질문을 보내오는 학생이 수두룩하다”며 “힘들기도 하지만 교수로서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어떤 임원은 교육에 지장을 주기 싫다며 동료 학생들 모르게 아들 결혼식을 치르려다가 우연한 기회에 알려지기도 했다.

‘임원 학생’ 30명은 이미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별명을 얻었다. ‘서울대의 공부벌레들.’

▽‘실험’의 이유=이들의 1인당 공식 교육비용은 1500만원. 그러나 1인당 4개월간의 평균 연봉 3300만원에, 이들의 평균 매출기여도를 기회비용으로 환산한 2억7000만원(대한항공 추산)을 더하면 1인당 총 교육비용은 3억1800만원에 이른다. 항공산업이 최근 불황을 겪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투자인 셈. 그런데도 회사는 ‘실험’을 강행했다. 교육기간 중 업무에 원천적으로 관여하지 못하도록 30명 보직에 대해 직무대행을 발령했다.

교육지원팀 허신열 부장은 “전문경영인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조양호(趙亮鎬) 회장의 의지가 가시화된 것”이라며 “책임경영 및 소사장제 본격 도입을 앞두고 임원들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무에 적용한다=이들은 다음달부터 10개 팀으로 나눠 각각 회사업무 개선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회사 업무와 관련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 최고경영진 앞에서 발표까지 해야 하므로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채택된 프로젝트는 실무에 적용된다. 이들은 8월 31일 과정을 마치는 날 ‘대한항공 임원진 경영능력 향상 프로그램(KEDP)’ 수료증을 받는다.

김백순 상무는 “체력적으론 힘들지만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며 “회사에 돌아가면 새로운 시각에서 업무보고서를 볼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내 대기업에서는 아직까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이 ‘실험’의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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