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주행시험장'…시속 180㎞로 우회전 “어? 안쏠리네”

  • 입력 2003년 5월 25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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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40, 160, 180….

자동차는 시속 180km까지 올라가며 직선 차로의 끝에 다다랐다. 눈앞에 도로가 벽처럼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차는 벽을 타고 오른쪽으로 크게 회전했다. 평소라면 몸이 쏠리기 마련인데 조금도 몸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감자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경기 화성시 삼존리에 국내 최고 수준의 자동차주행시험장이 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에 의해 완공됐다. 65만평의 시험장에는 ‘원심력을 느끼지 못하는 곡선 도로’ 등 다양한 첨단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행시험장은 신차, 타이어, 자동차 부품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곳이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회전할 때 원심력을 ‘0’으로 만든다는 5km 길이의 육상트랙처럼 생긴 도로였다. 이곳은 시속 250km까지 마치 직선도로처럼 끝없이 달릴 수 있다.

자동차를 타고 오른쪽으로 회전하면 몸은 왼쪽으로 쏠린다. 원심력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마술처럼 원심력을 느끼지 못한다. 반원처럼 생긴 곡선 차로가 벨로드롬 경기장처럼 들려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벽을 타고 도는데 가장 경사가 심한 곳은 42도나 된다.

단순히 도로를 들어준다고 원심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차의 속도와 회전 각도에 따라 도로의 경사가 변하는 ‘매코넬 곡선’ 디자인이 비밀이다. 연구소 천명림 주행연구팀장은 “차가 우회전을 하면 자동차는 왼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힘을 받는데 이 힘과 수직이 되게 경사면을 세워주면 자동차에 탄 사람이 원심력을 느끼지 못한다”며 “디자인과 설계 모두 한국 기술로 해냈다”고 말했다.

자동차가 회전을 할수록 힘의 방향은 달라지고 경사도 달라진다. 곡선 도로는 모두 4차로로 되어 있는데 시속 100∼250km에 맞춰 각 차로의 경사가 다르다. 만일 시속 140km 구간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면 원심력보다 경사가 더 커서 오른쪽으로 회전해도 오른쪽으로 몸이 쏠리는 ‘거꾸로 현상’이 나타난다.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잘 듣는지 검사하는 저마찰로도 흥미롭다. 이곳의 저마찰로는 모두 3가지 종류다. 가장 미끄러운 빙판길, 다져진 눈길, 눈이 오는 길을 본뜬 것이다. 보통 도로의 마찰 계수가 0.8∼0.9라면 빙판길은 0.1, 다져진 눈길은 0.3, 눈이 오는 길은 0.5다.

물론 진짜 얼음은 아니다. 빙판길에는 얼굴만한 타일, 다져진 눈길에는 휴대전화만한 타일이 깔려 있다. 눈이 오는 길에는 알록달록한 손톱 크기의 돌이 잔뜩 박혀 있다. 표면이 매끄러운 타일에 물을 뿌리면 마찰 계수가 실제 빙판길처럼 나온다. 빙판길을 시속 40km로 진입하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30∼40m는 미끄러지고, ABS가 없는 차는 회전하게 된다. 남궁석완 차장은 “빙판길 타일은 특수 세라믹, 다져진 눈길의 타일은 현무암을 녹여 만든 것이며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다”고 설명했다. 조약돌조차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한 것이다.

이 밖에도 이곳에는 직선로, 종합시험로, 전파장해시험장, 소음시험장 등 다양한 야외 시험장과 실내시험장이 있다. 야외 도로만 16.3km 길이다. 원래 이곳은 염전이었다. 연구소는 주행로를 짓기 위해 갯벌에 기둥 모양으로 구멍을 판 뒤 모래를 채우고 그 위에 10여m 높이로 흙을 덮어 3년 동안 두부에서 물을 짜내듯 염전에서 물을 짜내 땅을 다졌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현대·기아자동차만 자체 시험장을 갖고 있었을 뿐 다른 자동차 관련 회사들은 외국에 나가 주행 시험을 받곤 했다. 천 팀장은 “앞으로 국내에서 자동차 성능을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게 돼 자동차의 안전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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