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박형준/특급호텔과 이미지

  • 입력 2003년 5월 22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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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싸게 팔더라도 객실을 놀리는 것보다야 낫죠. 패키지 상품마저 내놓지 않는다면 호텔 문을 닫아야 할 판입니다.”

“최근 호텔 패키지 상품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것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한 호텔 직원이 대답했다. 요즘 호텔의 경영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만하다.

서울 시내 특1급 호텔의 패키지 상품은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다. 통상 국제 비즈니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4∼6월에는 패키지 상품이 거의 없다. 따로 할인하지 않더라도 80% 이상 객실이 차기 때문이다.

반면 여름휴가가 시작되는 7월부터는 패키지 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호텔 투숙객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 비즈니스맨들이 격감하기 때문에 내국인 고객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국제행사가 대부분 취소되면서 호텔 투숙객이 크게 줄자 때 아닌 4월과 5월에 각종 패키지 상품이 나온 것.

롯데호텔은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아침식사뿐 아니라 저녁식사까지 포함된 19만원짜리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여름과 겨울 패키지 상품을 빼고는 웬만하면 가격을 깎아 주지 않는 신라호텔도 20만원 이하의 상품을 내놓았다. 통상 성수기 호텔 요금이 38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패키지 상품 수도 많다. 5월 현재 조선호텔은 8가지를, 신라호텔은 7가지를, 롯데호텔은 5가지를 내놓은 상태다. 지난해 이맘때는 주말패키지 1개 정도가 다였다. 통상 7월 중순에 선보였던 여름 상품도 앞당겨 6월 초에 내놓는다고 한다. 세일의 연속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호텔 경영이 나아질 수 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내국인들이 어느 정도 객실을 채워 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어떨까. 호텔은 시설뿐 아니라 이미지를 파는 곳이다. 국빈이나 귀빈(VIP)이 찾아오는 특1급 호텔에 반팔 티셔츠 차림의 가족 고객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외국에서도 대부분의 호텔이 가격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지만, 소위 ‘최고급 호텔’로 지칭되는 파크하야트나 포시즌호텔 등은 가격 할인이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특1급 호텔이라면 수익 차원을 넘어 이미지 관리도 필요하지 않을까.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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