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매연기 조치 6월이면 끝나]카드債 부실 은행권 '시한폭탄'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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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채 사태는 잠시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언제 다시 시장에 몰아칠지 모른다.’

올 초 SK글로벌 사태로 촉발된 투신권 환매가 카드채로 옮아붙자 정부는 직접 시장에 개입해 카드채 환매연기 등 고강도의 시장안정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임시방편으로 6월 말까지 해결시한을 연장해 놓은 것이어서 강력한 발화성을 지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모건스탠리의 아시아지역 수석 애널리스트인 앤디 시에는 “한국 정부가 신용카드사를 지원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확대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며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신용카드사는 도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경고했다.

▽카드가 무너지면 은행이 무너진다(?)=지난달 초 정부는 금융권으로 하여금 4∼6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투신권 보유 카드채의 50%를 공동으로 매입토록 하되 카드사가 이를 되갚도록 했다.

나머지 50%는 투신사 책임 아래 만기연장하고 은행을 비롯한 다른 금융권에서 갖고 있는 카드채도 모두 만기연장하도록 했다. 정부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은 ‘투신사 보호’도 있지만 ‘카드사가 무너지면 은행이 부실해진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카드채 발행잔액은 88조8000억원으로 투신권이 25조5000억원을 갖고 있으며 은행권도 25조2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은행들은 카드 자회사를 갖고 있어 자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모(母)은행이 매입해 주고 투자 차원에서 카드채를 많이 사들였다.

카드사 상품은 예금보호 대상이 아니어서 도산해도 정부의 부담이 크지 않지만 카드사 부실이 은행부실로 이어지면 다시 공적자금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정부는 걱정하고 있다.

▽은행 신탁계정이 골칫거리=상황이 좀 복잡한 것은 은행이 자기 돈(고유계정)이 아닌 고객이 맡긴 돈(신탁계정)으로 산 카드채다. 지금은 고객이 신탁상품의 만기가 돼 돈을 찾거나 중간에 해약하면 은행들은 카드채가 아닌 펀드 내 다른 투자상품을 팔아 돈을 내주고 있다.

따라서 나중에 돈을 찾는 고객은 펀드에 카드채만 남아 있어 돈을 찾지 못하거나 아니면 카드채 금리가 올라 손해를 보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A은행 임원은 “고객들은 일반적으로 은행 권유로 신탁상품을 사는데 만약 카드채로 손해를 보거나 돈을 찾지 못하게 되면 은행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예금을 빼 갈 것”이라며 “지금까지 전례로 볼 때 은행이 손실을 보전해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신탁계정에서 갖고 있는 카드채는 약 6조7000억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은행권에 카드채 만기연장을 종용한 것은 신탁계정에서 갖고 있는 카드채를 은행 고유계정에서 사라는 뜻. 이는 고객이 책임져야 할 손해를 은행이 대신 떠안는 것이어서 ‘자기 책임하에 투자한다’는 신탁상품의 기본원칙을 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여론에 밀려 고객이 손해를 보게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은행들도 ‘정부가 6월 말이면 무슨 대책을 내놓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만 하고 있을 뿐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카드사, CP 만기연장이 관건=카드채 사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연체율이 낮아지고 신뢰를 회복해 카드채가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거래돼야 한다. 정부는 카드사를 지원하는 대신 4조5500억원의 증자약속을 받았다. 현재 1, 2개 회사를 제외하고는 증자계획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회사채도 어느 정도 시장에서 소화되고 있다.

문제는 만기가 3∼6개월인 기업어음(CP) 22조원. 정부가 금융회사 보유분은 만기연장 조치를 했으나 나머지는 카드사가 차환발행(새로운 채권을 발행해 기존채권을 갚는 것)하거나 갚아야 한다.

그러나 카드사의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채권금리가 많이 올라가 차환발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신용도가 낮아진 만큼 채권금리가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카드사들은 “그 금리를 줘서는 남는 게 없다”며 버티고 있다.

카드사들은 현재 보유 중인 자금으로 6월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이후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삼성카드는 6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의 50%가 CP다.

신용카드는 지급결제를 편리하게 하는 수단이라는 기본원칙에서 벗어나 급전 조달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카드사도 CP 발행을 통해 대출 재원을 조달했다.

이처럼 카드사는 단기자금을 조달해 고금리 대출을 해주면서 발생한 만기불일치(Mismatching)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카드채가 금융시장 전체를 뒤집어 놓는 ‘시한폭탄’이 될지 시장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신용카드 연체율 하락은 착시현상"▼

카드사별 대환대출 잔액 증가 추이 (단위:억원)
카드사2002년 12월말 현재2003년 3월말 현재
LG38,74051,130
삼성12,00020,000
국민12,73318,059
외환6,9108,800
현대 870 1,700
자료:각 회사

‘신용카드 연체율 하락은 대세인가, 착시현상인가.’

올 들어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신용카드 연체율이 3월 말 소폭 하락했다.

일부 카드사들은 연체율 하락을 경영정상화의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카드사들이 연체대금을 대출로 전환해주는 대환대출에 적극 나선 덕분이지 카드대금 연체 고객이 실제로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9개 전업카드사의 3월 말 현재 연체율(1개월 이상)은 9.8%로 전월보다 0.6%포인트 낮아졌다.

전업카드사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지난해 말 6.6%에서 1월 8.4%, 2월 10.4% 등으로 오르다가 3월 들어 한풀 꺾였다.

9개사 중 국민 삼성 현대 우리 신한 등 5개사의 연체율이 하락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처럼 연체율이 떨어진 것을 두고 “카드사들이 연체자에 대한 대환대출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환대출이란 연체 대금을 신규 대출로 바꾸어, 갚는 기한을 늦추어주는 것을 말한다. 한꺼번에 밀린 카드대금을 갚기 어려운 고객에게 장기간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9개 전업카드사의 3월 말 현재 대환대출 규모가 10조5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9월 말(4조7000억원)에 비해 6개월 만에 2.23배로 증가한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 대환대출 증가세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1월에는 전달(2002년 12월)에 비해 5000억원(7.1%) 늘어났으나 2월 1조3000억원(17.3%) 증가한 데 이어 3월에는 한 달 만에 1조7000억원(19.3%) 늘었다.

대환대출이 이처럼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은 카드사들이 급증하는 연체율을 줄이기 위해 연체 고객들에게 대환대출을 적극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체율이 올라가면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하지만 대환대출은 신규 대출로 분류돼 연체율 산정에서 제외된다.

연체자는 신용불량자로 등록되지 않고 카드대금을 장기간 나눠 갚아서 좋고 카드사들은 연체율을 낮추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환대출의 빠른 증가 추세에 맞춰 연체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환대출을 감안한 실질 연체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하나증권 유승창 애널리스트는 “대환대출을 받은 연체자 가운데 또다시 연체하는 사람이 많다”며 “대환대출은 카드사들의 수익성 개선을 지연시킬 뿐”이라고 설명했다.

유 애널리스트는 A카드사의 경우 3월 말 현재 30일 이상 연체율이 10.5%인데, 대환대출과 대손상각을 감안하면 실제 연체율이 28.6%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대환대출은 신용불량자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덮어두고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라며 “오히려 더 큰 부실과 위기만 불러온다”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정부 6월이후 대책은▼

카드사별 자본확충 계획 (단위:억원)
카드사상반기하반기
LG 5,000 5,00010,000
삼성 5,000 5,00010,000
국민 5,500 5,00010,500
외환 1,200 1,200 2,400
우리 2,000 2,000 4,000
현대 3,600 1,000 4,600
롯데 - 2,000 2,000
신한 1,000 1,000 2,000
총계23,30022,20045,500
증자와 후순위채 발행을 합한 것임. 우리카드와 현대카드는 3월 말 이미 각각 2000억원과 1800억원 증가. 자료:금융감독원

정부의 카드채(債) 문제에 대한 판단은 “일단 불길은 잡혔으니 다음 단계는 불씨 끄기”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카드채 유통이 조금씩 재개되고 있는데다 카드사들의 현금지급 능력(청산능력)에 큰 문제가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 대신 정부가 카드사에 요구한 증자와 구조조정을 포함한 자구노력 이행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융감독원 김중회(金重會) 부원장은 “카드채가 금융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을 정도로 금융시장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며 “이 상태가 유지되면 6월 이후에 카드사와 관련한 인위적인 조치는 안 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부원장은 “3월말 카드사 종합대책에서 6월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절반의 카드채에 대해 만기연장을 해 주어 급한 불을 껐지만 새로 발행되는 카드채에 대해서는 만기연장을 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금융시장이 그 정도로 안정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카드회사가 발행한 기업어음(CP) 처리와 관련, 김 부원장은 “투신권의 환매자금 30조원이 시중에 대기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카드사에 대한 신뢰가 살아나고 있어 카드사의 CP 유통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카드사들에 요구한 증자 등의 자본확충과 자구노력 이행.

금융감독위원회의 김석동(金錫東) 감독정책1국장은 “카드사들의 장래는 하반기에 카드사들이 어떤 모습의 구조조정과 자구안을 이행하느냐에 달려있다”며 “카드사들의 진퇴는 이제 시장에서 판단할 것이며 퇴출되는 카드사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원장도 “근본적으로 카드채 문제는 카드사들의 연체율과 부실채권 규모가 관건”이라며 “카드사들의 채권관리를 지속적으로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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