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냐 회사냐…" 젊은 CFO의 선택

  • 입력 2003년 4월 18일 16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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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견인에 대한 의리'가 먼저냐, '회사 이익'이 우선이냐.

한국 기업의 임원들에게 흔히 던져지는 어려운 선택 앞에서 SK㈜ 유정준(兪柾準·41) 전무의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SK(주)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유전무는 최태원(崔泰源)SK(주)회장의 '핵심브레인'으로 불려온 인물. 그를 딜레마에 빠지게 한 것은 회사측 이익과 '보스'인 최회장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있기 때문.

최회장의 경영권 유지는 특히 SK(주)의 SK글로벌에 대한 지원 여부에 달려 있다. 만약 글로벌의 경영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최회장이 채권단에 처분을 맡긴 계열사 지분이 매각돼 최회장은 경영권을 잃게 된다.

글로벌의 채권단측은 SK(주)가 갖고 있는 매출채권을 출자전환 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유전무는 "주주들 이익에 반하는 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글로벌에 대한 상품매출채권 1조5000억원을 출자전환도 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걸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해서 투명하게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SK의 한 임원은 "최회장에게는 섭섭한 일이겠지만 회사 내부에선 유전무가 회사 이익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회장측에서 유전무를 불러 "그럴 수 있느냐"고 서운함 이상의 감정을 전달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최회장측의 '배신감'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 회계학 석사인 유 전무는 애초에는 맥킨지 한국사무소를 거쳐 LG그룹에 입사했다. 98년 그가 SK로 오게 된 건 고려대 선배인 최회장의 권유였다. 최회장은 유전무를 데려오기 위해 LG그룹측에 양해를 구하는 등 많은 공을 들였다.

SK에 들어온 뒤 그는 자신의 능력에다 최회장의 후원까지 업고 고속 승진했다. 지난해 40세의 나이에 SK(주) 전무로 승진했고 등기이사로 전격 선임되기까지 했다.

이 정도 인연 같으면 대개 보스에 대한 충성심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게 과거 관행이었다. 하지만 유전무의 행태는 그같은 '주군-가신형' 관계에도 변화가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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