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프리즘]선우석호/경영권 위기 SK만의 일인가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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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규모 47조원의 초대형 기업 SK텔레콤이 자본금 200억원 미만인 외국계 펀드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 크레스트 시큐러티스란 이 영국계 펀드는 치밀한 계산 하에 SK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SK㈜의 주식을 사 모아 결국 지분 14.9%를 확보한 뒤 SK㈜의 대주주로서 SK텔레콤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모두들 크레스트가 정유사인 SK㈜의 경영권에 관심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때 그들은 SK텔레콤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려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불과 15일 만에 대그룹이 허를 찔린 셈이다.

▼법체계 모순에 거대그룹 허찔려 ▼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이 같은 사건이 국수주의적인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통신사업을 외국인들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법 때문이다. ‘보호법’이 ‘공격 허용 법’이 되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신사업법은 단일 외국인 지분이 15%가 넘는 경우 국내기업도 외국인으로 간주하며 모든 외국인이 보유한 지분이 49%를 넘으면 그 이상의 외국인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크레스트가 SK㈜의 지분 0.1%(11억원 상당)를 더 매입해 15%의 지분을 확보하면 SK㈜는 통신사업법에 따라 외국인이 된다. 외국인 전체가 49%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므로 SK㈜는 현재 다른 외국투자자들의 지분 41%를 제외한 8%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21%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8%에 대한 의결권만을 행사할 수밖에 없어 SK텔레콤에 대한 경영권 행사가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그룹 총수가 구속된 상황에서 최대 핵심기업인 SK텔레콤이 영향권 밖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최씨 일가의 입장에서 보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앞으로 크레스트는 SK㈜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경영참여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SK㈜의 경우 외국인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하게 되면서 출자총액제한제도에서 벗어나 과거 행사하지 못했던 계열사 지분 1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SK㈜에 대한 그룹측 지배권은 오히려 강화됐다. 문제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SK텔레콤에 대한 경영권이 크레스트의 지분 추가 매입 여부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크레스트의 관심은 투자수익의 회수이기 때문에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될 배당금 증대나 자사주 매입만을 요구하려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언제나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뭉치로 그들 지분을 사려는 투자자를 반길 것이다. 새 투자자는 세계시장에서 경쟁적인 통신사업자일 수도 있다. 따라서 SK그룹측은 크레스트의 요구를 물리치거나 새로운 경영권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 대규모 우호세력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가족 중심의 선단식 경영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견 SK그룹의 경영이 대주주 이익을 대변했던 경영방식에서 주주 모두가 골고루 이익을 보는 주가중심 경영방식으로 변모하고 있어 좋은 징조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점에서 큰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오너경영’ 대체할 기업조직 필요 ▼

첫째, 주인 있는 경영을 대체할 새로운 기업조직이 정착되지 않았고, 책임 있고 도전적인 전문경영인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공적인 기업지배구조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사회 하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태동 단계에 있다. 여태까지 공적인 지배구조가 채워줬어야 할 공백을 메워주면서 삼성전자나 SK텔레콤 같은 초일류기업이 탄생된 데에는 대주주 가족의 도전과 냉혹한 경영자 감독이 있어왔다. 이제 이들을 대체할 기업지배구조의 조기정착과 도전정신과 창의로 무장된 전문 경영인의 발굴이 급작스러운 과제로 다가온 것이다.

둘째, 기업도 적절한 방어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이 경영권 방어를 막는 제도들은 주식의 헐값 매각을 유도해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도 빨리 변화하고 변화를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역동적이어서 좋다. 역동적인 사회는 도전정신으로 무장된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된다. 기업경영이야말로 이들을 가장 목말라 하고 기다리는 분야가 아니겠는가.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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