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F '카드채 불똥' 고객 골탕

  • 입력 2003년 4월 6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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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를 판 증권사와 운용한 투신운용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원금이 보장되고 언제라도 돈을 돌려준다고 고객과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것 아닙니까.”

세입자의 월세보증금 3000만원을 중소형 증권사의 머니마켓펀드(MMF)에 넣어 운용하다 카드채 신용 불안 때문에 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권모씨(48·대구 수성구 중동)는 6일 “회사가 펀드를 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때 권씨에게 MMF는 은행 예금보다 이자를 더 주면서 언제든지 돈을 찾을 수 있는 좋은 투자 대상이었다. 펀드 가입을 권하며 증권사 직원이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권씨는 말했다.

“‘클린MMF’라는 이름처럼 속도 깨끗합니다. 국공채와 우량한 회사채에만 투자하고 원금은 보장됩니다. 언제든지 돈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3월11일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가 카드채 신용불안 등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지면서 MMF는 밤잠을 쫓는 원망의 대상이 됐다.

3월13일 권씨는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 “내 펀드에는 이상이 없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SK글로벌은 없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직원은 3월18일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당분간 환매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21일에는 증권사 사장 이름의 ‘수익증권 환매연기 안내문’이 날아왔다.

“SK글로벌이 없는 수익증권으로도 환매요청이 급증하면서 채권금리가 급등하고 편입자산이 팔리지 않아 고객 환매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투신운용사가 알려왔습니다.”

안내문은 “법과 약관에 따라 펀드가 투자한 자산을 팔 수 없으면 고객의 환매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가입할 때에는 듣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뒤늦게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권씨는 3월21일 증권사를 찾아가 돈을 찾으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3월24일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펀드 안에 뭐가 있는데 팔리지 않는다는 거요? 명세서라도 봅시다.”

직원이 주저하며 뽑아준 3월21일자 명세서상의 펀드 자산은 3561억원. 카드회사 1년만기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이 1832억원어치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증권사는 거래가 끊어진 카드채 이외의 자산이 팔려 돈이 들어올 때마다 환매를 원하는 고객에게 금액 비율로 나눠주고 있다.

권씨가 10만∼30만원씩 받은 돈은 6일까지 500만원. 다행히 돈을 다 찾으면 다시는 이 회사 또는 증권회사와 거래하지 않을 생각이다.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경쟁 증권사 MMF 팀장은 “지난해 말부터 단기 부동자금이 MMF에 몰렸지만 채권시장에서는 카드채 이외에 유통되는 회사채가 부족했다. 가계부채 부실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카드채에 무리하게 투자한 일부 펀드들이 된서리를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권씨의 MMF를 운용한 펀드매니저도 “MMF 자금유치 경쟁 속에서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다른 회사보다 금리를 많이 줘야 했고 카드채를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펀드매니저는 “그래도 우리 펀드에 SK글로벌 채권은 없다”고 말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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