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복합 '철새자금' 많다

  • 입력 2002년 11월 11일 18시 45분



지난 주말 서울 강남구 청담동 ‘롯데캐슬골드’ 모델하우스. 1층에서 3층까지 오르내리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을 정도로 호화판으로 꾸며져 있었지만 정작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는 내방객을 찾기는 어려웠다. 대신 당첨자 명단을 든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전화를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1억원은 힘들어요. 2000만원만 낮추시죠.” 분양권 전매를 종용하고 있는 이동식 부동산중개업자(떴다방)들이었다.

“분양권을 팔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아직은 매수세가 없어서 거래는 잘 안되지만 조만간 ‘손바뀜’이 있을 거예요.”

이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은 334 대 1. 1차분 80가구에 2만6723명이 지원했다. 청약금만 2700억원이 몰렸다.

▽현장마다 몰려다니는 ‘철새 자금’〓주상복합아파트 시장이 심상치 않다. 일반 아파트는 청약률이 뚝 떨어졌는데도 주상복합은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10월 중순 청약을 받은 서울 종로구 수송동 ‘신영 로열팰리스스위트’가 20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데 이어 서초구 서초동 ‘포스코건설 더#’이 32 대 1, 송파구 신천동 ‘롯데캐슬골드’는 334 대 1로 올라갔다.

주상복합이 인기를 끄는 표면적인 이유는 분양권 전매가 자유롭기 때문. 하지만 이를 틈탄 ‘철새 자금’이 대거 몰리고 있어 청약률이 과대 포장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 신영 로열팰리스스위트 당첨자 발표가 있은 직후 모델하우스에는 계약자보다 청약금 환불을 요구하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다른 주상복합에 청약하기 위해서다.

실제 최근 문을 연 주상복합 모델하우스마다 100여명으로 추산되는 ‘고정 고객’이 항상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 최상규 부장은 “신영에서 포스코건설로, 다시 롯데건설로 자리를 옮겨가며 청약하는 ‘꾼’들이 분위기를 잡고 있다”고 전했다.

주상복합마다 한 명이 10건 이상 청약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도 이들 때문이라는 것.

▽분양전략도 한몫〓건설회사의 분양 전략도 철새자금을 끌어 모으는 요인이다.

10억원이 넘는 아파트지만 청약 증거금은 1000만원에 불과하다. 일반 아파트에 지원할 수 있는 청약통장 최대 적립금은 1500만원. 그나마 2년이 지나야 1순위 자격을 얻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상복합의 진입장벽은 아주 낮은 셈이다.

건설회사로서는 일반인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배려’이지만 투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M컨설팅 관계자는 “청약률이 올라가면 일반인의 관심도 덩달아 늘게 돼 ‘묻지마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분양이 잘 되는 일부 층만 먼저 청약을 받는 것도 경쟁률이 높아진 중요한 이유. 롯데건설은 400가구 가운데 조망이 좋은 상층부 80가구만 청약을 받았다. 일단 경쟁률을 높여 주목을 끈 뒤 저층부를 분양하겠다는 전략이다.

▽국세청 “예의주시”〓주상복합이 과열 기미를 보이자 정부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상복합 별로 당첨자 명단과 청약 경쟁률을 확보해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직까지는 청약 과열을 국지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지만 열기가 확산되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설교통부도 마찬가지다. 건교부 주택정책과 윤성원 서기관은 “분양권 전매 제한 규정을 주상복합으로 확대 적용할 지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라며 “일단 연말까지 상황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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