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무덤 판 벤처 '밀어내기 매출'

  • 입력 2002년 11월 5일 19시 22분


지난주 발생한 RF로직 소프트윈 에이콘 등의 연쇄부도 파장이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콤텔시스템 M플러스텍 한국하이네트 자네트시스템 등 이번 사건과 관계된 어음을 들고 있는 기업의 주가가 며칠째 폭락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한국하이네트는 3거래일 만에 주가가 30%가량 하락했고 다른 회사들도 20∼30%씩 주가가 떨어졌다. 증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수십 개 업체가 RF로직이라는 정체불명 회사의 어음을 어떻게 믿고 수십억원대 물건을 건네줬을까”라는 의문점을 표시한다.

이번 사건으로 수많은 벤처기업이 큰 피해를 본 데에는 “상대의 신용이 불확실해도 일단 물건부터 팔고 보자”는 절박한 한국 정보기술(IT) 업계의 현실이 깔려 있다는 평가다.

▽신용은 없어도 된다〓업계에서는 부도난 RF로직 등과 거래를 했다가 휴지가 된 어음을 들고 있는 벤처기업이 대략 수십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RF로직이라는 회사의 정체가 불분명한데도 수많은 기업이 이 회사의 어음만 믿고 물건을 대줬다는 점.

물론 RF로직은 지난달 말 부도가 난 소프트윈의 최대주주 노릇을 하면서, 또 소프트뱅크코리아 등 대기업과 잦은 거래를 하면서 ‘신뢰도가 높은 기업’인 척해 온 것이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자본금이 고작 2억원에 불과한데다 IT유통기업인지 연예기획사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운 회사가 이토록 많은 거래를 손쉽게 성사시켰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

RF로직에 물린 어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지금 같은 불경기에 물건을 사겠다고 하면 일단 팔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관행이 된 외상 거래〓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본 IT 기업은 모두 현금장사를 하지 않고 외상 거래를 한 회사. 물건만 내준 뒤 돈은 대부분 어음으로 받았다. 물론 회사를 경영하면서 외상 매출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많은 벤처기업이 외상 매출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

관공서에 물건을 대지 않는 한 현금을 받고 물건을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대부분 만기 3∼9개월짜리 어음으로 결제하는 게 현실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오재원 애널리스트는 “최근 경기악화로 중소 IT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며 “외상매출이라도 감지덕지하는 업계의 현실이 결국 대형 사기사건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RF로직 등 부도 피해기업 최근주가
10월31일11월5일등락률
자네트시스템1,030850-17.47
한국하이네트2,4201,660-31.40
M플러스텍300230-23.33
콤텔시스템1,5501,370-11.61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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