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한국후지제록스 '일본식 경영' 한국서 성과

  • 입력 2002년 8월 21일 17시 53분



1998년 3월 코리아제록스가 일본의 후지제록스에 인수된 뒤 키가 자그마한 일본인이 새 회장으로 왔다.

직원들은 불안했다. 새 회장이 대량 인원감축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중이어서 건실한 기업들도 경쟁력을 키우느라 인원을 줄이는 판이었다.

새 회장은 여기저기 코리아제록스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을 ‘한국후지제록스’로 바꾸고 노사관계도 새롭게 정립했다.

그로부터 3년 뒤.

한국후지제록스는 노사분규가 없는 외국계 기업이 되어 지난해 12월 노동부로부터 ‘신노사문화 대상’을 받았고, 같은 해 11월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으로부터 ‘바른 외국기업상’을 받은 건실한 기업이 됐다.

일본 후지제록스 본사로부터 ‘리스트럭처링’ 임무를 받고 한국에 온 다카스기 노부야(高杉暢也·60·사진) 회장. 그가 바로 한국 기업에 일본식 경영을 접목해 성공을 거둔 주인공이다.

▽인원 감축은 하지 않는다〓일본 기업은 전통적으로 종신고용을 보장한다. 다카스기 회장도 1966년 후지제록스 경리부에 입사한 이후 한차례도 회사를 옮기지 않았다.

그는 외환위기 초기에 한국후지제록스 회장에 취임해 한국후지제록스 인원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근로자들이 회사를 믿고 다닐 수 있도록 하는데 노력했다.

사시(社是)도 ‘강하고 즐겁고 정다운 회사’로 바꿨다. 강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사내 직원들이 신바람이 나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른 것. 정(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 기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경영 방침으로 한국후지제록스는 노사분규가 없는 회사가 됐다.

이 회사 이규환 노조위원장은 “초기에는 정서적 문화적 차이가 컸지만 지금은 회사측이 근로자의 입장에서 이해해 준다”며 “올 임금협상도 무교섭으로 타결됐다”고 말했다.

▽충(忠)과 효(孝)는 하나다〓일본 회사 직원들은 충성으로 상사를 모시고, 회사는 그러한 직원을 평생 고용해 왔다. 반면 한국 사회는 효 중심적인 사회. 가정에서는 부모를 공손히 섬기지만 회사는 ‘돈을 버는 장소’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카스기 회장은 노사신뢰가 쌓이면 회사에서도 충성심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는 노사신뢰를 위해 투명성을 강조, 매달 홍보비디오를 만들어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을 직원들에게 알렸다. 분기마다 노사협의회를 열어 경영실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의 열린 경영은 노사신뢰를 쌓는 밑거름이 됐고, 직원들이 회사를 믿고 충성으로 일하게 만들었다.

▽양보다는 질적 성장을〓다카스기 회장 취임 이후 한국후지제록스는 질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매출액은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그쳤지만 자산수익률(ROA)이 매년 높아져 올해는 9.3%로 전망된다. 현재 150% 수준인 부채비율도 2004년까지 0% 가까이 줄이려 한다. 그만큼 알찬 기업이 된 것.

이 회사 황흥국 기획실장은 “초기에는 ‘일본기업이 한국을 집어삼킨다’는 걱정도 많았지만 지금은 다카스기 회장의 일본식 경영에 다들 만족하고 있다”며 “성과만을 따지는 미국식 경영을 도입했더라면 노사관계와 회사경영이 이만큼 좋아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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