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미셸 캉페아뉘/˝보험, 왜 중도해지 합니까?˝

  • 입력 2002년 6월 14일 19시 09분


내가 생명보험사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누구도 자신에게 닥칠 질병과 사고를 내다볼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준비된 사람의 미래는 훨씬 안정될 수밖에 없다. 보험은 이같은 알 수 없는 미래를 겨냥해 금전적 보상을 해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은 보험대국이다. 보험 가입률이 90%에 육박한다. 보험료 수입 기준으로 세계 6위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험료 지출 규모로는 세계 3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은 ‘미완의 대국’이란 느낌이다. 내가 1995년 한국 보험시장과 인연을 맺으면서 한국인은 가입중인 보험을 중간에 해지하는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높은 중도해지율은 보험영업 방식과 무관치 않다. 한국에선 아직도 나와 가족의 노후를 설계하면서 자산을 보험사에 맡긴다는 차원의 보험가입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한번 들어달라”는 친척이나 이웃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은 투자에 대단히 열성적이다. 서울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가끔 들러보면 ‘부자가 되는 길’ 등의 투자전략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넘쳐 난다. 그러나 보험은 투자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보험 영업은 가장 초보적인 형태다.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도 이러한 ‘이웃의 권유로 보험 드는’ 관행은 존재했었다. 유럽에서도 아는 사람을 통한 보험상품 판매가 불과 십수년 전까지 존재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설계사의 조언을 듣거나, 거래하는 은행지점에서 상품 소개를 받은 뒤 가입(방카슈랑스)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인터넷에 접속해 상품 설명을 들은 뒤 가입하는 판매채널이 대부분이다.

선진국에선 보험가입이 증권투자 은행저축과 더불어 3대 투자 방식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수입의 15%를, 독일은 30%를 보험에 ‘투자’한다.

보험은 다른 투자수단과는 달리 오랫동안 돈을 붓고 한참 뒤에 돌려 받는 장기상품이다. 그래서 멋 훗날에 대비하는 종신보험, 개인연금상품 등이 인기다.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선보인 변액보험(보험금의 일부를 주식 채권 등에 투자)은 고수익을 원하는 고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노령화 사회가 먼저 닥친 선진국에서 보험은 사고나 질병이 생겼을 때 금전적으로 보장받고, 은퇴 후 생활을 대비하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한국 사회도 노령화 사회가 코앞에 있다.개인연금 같은 보험상품의 중요성과 전문가의 재정설계 도움이 더 절실해 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약관이나 보험 상품의 내용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고객이 많지 않다. 내가 정말로 필요한 보험에 가입했는지, 내용이나 혜택이 어떤지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다. 그러다 보니 보험 가입을 권유했던 친지가 보험사를 떠나자마자 보험을 해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험해지율이 높다는 것은 결국 가입자 이익 축소로 이어진다. 중도해지는 보험회사에 30년간 월 10만원이 꾸준히 들어올 것을 예상했던 자금 흐름을 바꾸도록 강요한다. 이처럼 보험사가 장기적인 자금 운용을 못하게 되면 수익률이 낮은 단기상품에 투자해야 하고, 대비책 마련을 위해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결국 고객의 몫이 줄어들게 된다.

보험은 당장의 필요보다는 수십 년 후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한국 보험시장이 규모에 걸맞게 선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미셸 캉페아뉘 알리안츠제일생명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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