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대기업 리더들]<1>삼성그룹/①인재사관학교-비서실 인맥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46분


삼성 사장단회의
삼성 사장단회의
《한국의 대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한국경제를 이끄는 주도권이 민간으로 옮겨가면서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핵심 임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실력파 전문경영인들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일보 경제부는 주요 대기업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CEO 및 주요 임원들의 인간상(人間像)과 성공비결 등을 깊이 있게 짚어보는 장기시리즈를 시작한다.》

이수빈(李洙彬) 삼성생명 회장, 현명관(玄明官) 삼성물산 회장, 윤종용(尹鍾龍) 삼성전자 부회장, 이형도(李亨道) 삼성전기 부회장, 이학수(李鶴洙)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지난달까지만 해도 한국 최대 그룹 삼성의 방향타는 이들 5인의 최고경영자(CEO)가 쥐고 있었다.

이들은 2주일에 한번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27층 회의실에서 열리는 삼성 구조조정위원회의 멤버. 신규사업 진출, 외국업체와의 합작, 대규모 투자 등 그룹의 굵직한 현안에 대해 긴밀하게 의견을 조율해왔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수빈 회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논의된 결과를 이학수 본부장이 이건희(李健熙) 회장에게 보고해 재가를 받는 식으로 이뤄졌다.

삼성 수뇌부는 요즘 구조조정위원회에 참석할 ‘새 얼굴’을 고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수빈, 현명관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데 이어 이형도 부회장도 다음달에 중국 총괄 CEO로 옮기기 때문. 공석이 된 위원회의 좌장은 윤 부회장이 맡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 회장과 현 회장은 이건희 회장 취임 초기에 비서실장을 맡아 ‘이건희식 신경영’이 뿌리를 내리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따라서 두 원로의 퇴진은 이건희 회장의 제2기 경영체제가 본격 출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그룹의 최상층부 5명 중 3명이 한꺼번에 바뀌는 것은 조직의 안정을 중시하는 삼성의 기업문화를 감안할 때 이례적이다. 재계 소식통은 “삼성 내부에서 진행되는 세대교체의 격랑이 바깥의 예상보다 훨씬 거센 것 같다”며 “후임 인선 결과를 보면 삼성 경영진의 인맥 구도가 어떻게 재편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2기 체제’의 핵심멤버는 누구?〓삼성 고위관계자는 18일 구조조정위원회의 새 멤버 인선과 관련해 “전임자와의 업무 연관성과 그룹 내 위상 등을 감안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적임자로는 △황영기(黃永基) 삼성증권 사장과 배정충(裵正忠) 유석렬(柳錫烈) 삼성생명 사장(금융부문) △김순택(金淳澤) 삼성SDI 사장과 진대제(陳大濟) 삼성전자 사장(전자부문) △배종렬(裵鍾烈) 삼성물산 사장(물산 및 기타부문) 등이 거론된다.

유력 후보 가운데 비서실 출신이 단연 많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황영기 유석렬 김순택 배종렬 사장이 모두 비서실 근무 때 진가를 인정받은 ‘비서실 인맥’이다.

황영기 사장은 금융시장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난 데다 국제감각까지 갖춰 차기 삼성의 금융계열사를 책임질 경영자로 꼽힌다. 1990년대 초 비서실 국제금융팀장을 맡아 자금조달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이건희 회장의 해외출장 때 세련된 통역솜씨를 선보여 신임을 받았다.

김순택 사장은 18년 동안 비서실 감사팀장, 경영지도팀장, 비서팀장 등을 역임해 ‘비서실의 산 증인’으로 불린다. 첫인상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토론에서는 설득력 있는 논리 전개와 친화력 있는 화술로 상대방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지난해 반도체 경기침체 속에서도 5000억원대의 흑자를 올려 삼성의 핵심 경영자로 위상을 굳혔다.

유석렬 사장은 제일모직 삼성전자 등 제조업과 삼성캐피탈 삼성증권 삼성생명 등 금융사를 골고루 거친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 평소 “주먹구구식 이익이나 일확천금식 이익은 아무리 금액이 커도 장기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도(正道)를 지키는 경영’과 ‘건전한 이익의 창출’을 강조한다.

배종렬 사장은 1990년대 들어 비서실에서 기획팀장 홍보팀장 비서실차장 등으로 일하며 신경영 정착의 실무를 맡았다. 제일기획 사장 시절 외환위기로 광고업계가 불황에 빠져 있을 때 흑자경영을 일궈내는 뚝심을 과시했다.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

▽공채→제일모직→비서실→CEO〓삼성의 40대와 50대 핵심 경영진 가운데는 직장생활을 그룹의 ‘모체(母體)’격인 제일모직이나 제일합섬의 경리 또는 관리 부문에서 시작한 사람이 많다.

제일모직을 거쳐 비서실로 발탁되는 것은 삼성의 전형적인 승진코스. 이학수 본부장을 비롯해 이상현(李相鉉) 삼성전자 사장, 송용로(宋容魯) 삼성코닝 사장, 김징완(金澄完) 삼성중공업 사장, 배병관(裵秉官) 삼성테크윈 사장, 김현곤(金賢坤) 삼성BP화학 사장, 이재환(李在桓) 삼성벤처투자 사장, 유석렬 삼성생명 사장 등이 이런 코스를 밟았다.

최도석(崔道錫) 삼성전자 사장, 배호원(裵昊元) 삼성투신운용 사장, 제진훈(諸振勳) 삼성캐피탈 사장과 김인주(金仁宙)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의 친정도 제일모직이다.

이형도 삼성전기 부회장과 한용외(韓龍外) 삼성전자 사장, 고홍식(高洪植) 삼성종합화학 사장, 김순택 사장은 제일합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비서실로 발탁된 케이스다.

▽비서실 출신의 주목받는 CEO〓비서실 근무 경험을 살려 빼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하고 있는 CEO로는 이우희(李又熙) 에스원 사장, 배동만(裵東萬) 제일기획 사장, 양인모(梁仁模)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정준명(鄭埈明) 일본본사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우희 사장은 비서실 인력팀장을 지낸 인사 전문가로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지난해 경비보안업체인 에스원 사장을 맡은 뒤로는 스마트카드, 통신보안 등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야전사령관 스타일로 변신했다.

배동만 사장은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매일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사업 구상을 가다듬는 등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평. 에스원 대표로 일할 때 방범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요원들에게 “눈이 나빠져서는 안 된다”며 비타민을 직접 사다준 일화도 있다.

비서실 회장보좌역 겸 경영진단팀장을 맡았던 김징완 사장은 조선업계 CEO가 된 뒤 수주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홍콩 런던 오슬로 등 해외를 누비며 현장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고 이병철(李秉喆) 창업주의 수행비서로 일했던 양인모 삼성엔지니어링 사장도 1년 중 3분의 1가량을 해외에서 보낸다.

▼조직관리 인재중용 염두 고 이병철 회장 59년설립

▽‘재계의 인재사관학교’〓삼성이 비서실을 만든 것은 초보적인 형태의 그룹 외양을 갖추기 시작한 1959년이었다.

1980년대 초 삼성 비서실 이사를 지낸 전경련 손병두(孫炳斗) 부회장은 “이병철 회장은 일본의 미쓰비시와 미쓰이를 벤치마킹해 비서실 조직을 구상했다”고 전했다. 조직관리에 강한 미쓰비시와 인재를 중시하는 미쓰이의 기업문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설명. 삼성의 엘리트가 집결한 비서실이 재계의 ‘인재사관학교’라는 점은 삼성 외부에서 활동중인 CEO의 면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학서(具學書) 신세계 사장, 이승한(李承漢) 삼성테스코 사장, 홍성일(洪性一) 한국투자신탁증권 사장 등이 삼성 비서실에서 경영감각을 키웠다.

삼성 측은 “계열사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 비서실에 배치한 만큼 이들이 중용될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비서실 중심을 뛰어넘어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비서실 후신 구조조정본부

삼성 비서실의 후신인 구조조정본부는 현재 이학수(李鶴洙) 본부장을 정점으로 △김인주(金仁宙·44·부사장) 재무팀장 △이순동(李淳東·55·부사장) 홍보팀장 △노인식(魯寅植·51·전무) 인사팀장 △박근희(朴根熙·49·전무) 경영진단팀장 △김준(金準·44·상무) 비서팀장 등 5인 팀장체제로 운영된다.

이 본부장은 외환위기로 그룹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이건희(李健熙) 회장과 호흡을 맞추며 삼성의 구조조정을 주도해 그룹 수익구조를 탄탄하게 갖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어려운 시기마다 총수의 곁을 지켜 ‘난국극복형 참모’로 불린다. 1990년대 중반 삼성화재 대표를 맡아 시장점유율을 2, 3위 업체를 합한 것과 같은 수준으로 높여 ‘야전에서도 강한 경영인’으로 평가받았다.

김 재무팀장은 입사 후 줄곧 재무 경리 업무를 맡아온 ‘재무통’으로 각 계열사 재무구조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평. 97년 상무 승진 1년 만에 전무가 된 데 이어 지난해 43세의 나이로 전무 2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해 ‘40대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그룹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이 이학수 본부장이고, 이 본부장의 오른팔은 김 팀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홍보팀장은 신문기자를 거쳐 전자 홍보팀장, 비서실 홍보담당 이사 등을 역임한 삼성의 대표적인 홍보맨. 특유의 친화력으로 언론계와 폭넓은 교분을 유지하고 있다.

박 경영진단팀장은 비서실에서 5년째 그룹 감사를 총괄하면서 계열사 경영을 밀착 진단하고 있다. 노 인사팀장은 이우희 에스원 사장의 뒤를 잇는 그룹의 인사전문가.

회장수행 업무를 담당하는 김 비서팀장은 실무형으로 회장과 계열사 경영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성 비서실 출신의 최고경영자 (자료:삼성)
회사현재 직위이름 나이 학력출신지
삼성전자 사장이상현53진주고, 연세대 상학경남 산청
사장한용외55대구고, 영남대 경영학 경남 합천
삼성SDI 사장김순택53경북고, 경북대 경제학경남 합천
삼성전기 부회장이형도59부산고, 서울대 화학공학부산
삼성코닝 사장송용로57용산고, 성균관대 경영학충북 보은
삼성중공업 사장김징완56현풍고, 고려대 사학대구
삼성테크윈 사장 배병관57체신고, 고려대 정치외교충남 공주
삼성종합화학 사장고홍식55광주일고, 한양대 기계공학전남 고흥
삼성석유화학 사장최성래58경복고, 서울대 경제학충남 당진
삼성BP화학 사장김현곤58당진상고, 서울대 무역학충남 당진
삼성생명 사장유석렬52경기고, 서울대 경영학서울
삼성증권 사장 황영기50서울고, 서울대 무역학경북 영덕
삼성벤처투자 사장이재환54부산고, 서울대 화학공학부산
삼성물산 사장배종렬59부산고, 서울대 무역학부산
제일모직 사장안복현53충주고, 경희대 경영학충북 단양
제일기획 사장배동만58보성고, 고려대 축산학충북 충주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양인모62광주고, 한국외대 독어과전남 구례
에스원 사장이우희55부산고, 부산대 법학경남 의령
일본 삼성 사장정준명56서울고, 경희대 전자공학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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