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부실채권 '편법 정리'…부실여신 담보로 11조 ABS발행

  • 입력 2002년 2월 8일 17시 58분


시중은행들의 부실채권 정리가 형식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부에서는 부실채권이 크게 줄었지만 실제로는 은행이 여전히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들은 작년에 42조원의 부실채권을 줄였다고 밝혔지만 이 가운데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통해 줄인 10조9000억원(26%)은 장부에서만 부실이 사라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이 작년 말 3.4%로 사상 최저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4% 아래로 낮추지 않을 경우 제재를 받게 돼 있어 ‘편법 낮추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ABS의 발행구조〓정부는 외환위기를 맞아 눈덩이처럼 불어난 은행들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ABS 제도를 도입했다. 부실여신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

먼저 은행들이 서류상 회사인 특수목적회사(SPC·자본금 1000만원)를 설립해 이곳에 담보 및 무담보 여신을 시가에 넘긴다. 가치평가는 외부 신용평가기관과 회계법인이 참여해 아주 보수적으로 미래현금흐름을 추정한다.

SPC는 이 여신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일반인에게 판매하거나 인수자가 없을 경우 은행들이 직접 인수한다. 이때 신용보증기관 또는 은행이 보증을 서는 형식으로 채권의 신용도를 최우량등급인 AAA까지 높인다.

채권 원리금은 담보물건을 처분하거나 무담보여신을 회수한 돈으로 지급한다.

▽실질적인 효과는 적다〓문제는 SPC에 넘긴 부실여신을 발행 은행이 그대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 장부상에서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은행인력이 부실채권 관리에 투입되고 있어 여전히 은행의 부담으로 남는다.

A은행 임원은 “채권 발행시 원리금상환이 제대로 안될 것에 대비해 은행이 보증을 서거나 SPC를 상대로 신용대출한도를 정해주는 등 채권의 부도위험을 은행이 떠안고 있다”며 “부실채권 정리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한빛과 외환은행에서 많이 나타난다. 한빛은행은 지난해 8조5352억원을 정리했지만 이 중 3조2091억원(37.5%)이 ABS발행이다. 외환은행은 이 비중이 53.1%(1조6205억원)나 된다.

B은행 관계자는 “한국은 아직 부실채권 시장이 발달돼 있지 않아 마땅히 매각할 곳이 없는 데다 인원감축과도 관련돼 있어 이를 완전히 털어 내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실채권▼대출금 이자를 3개월이상 받지 못한 악성 빚을 말한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2001년 말 부실채권비율을 4% 이하로 낮추지 못하면 제재를 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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