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주5일 근무제 시기상조…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 입력 2002년 2월 7일 17시 59분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들이 ‘동네북’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전경련 고위관계자는 정치권의 선거 채비를 지켜보는 재계의 기류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기업에 대한 국민 일각의 정서가 여전히 부정적인 점을 감안할 때 정치권이 각종 이익집단의 표를 의식해 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세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

같은 맥락에서 ‘상대적 약자’인 노동계와 여성에 대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할 가능성도 우려한다. 경제논리와 어긋나는 공약이 쏟아져 나오면 정책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기업 의 투자심리도 다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이미 올해 경제의 최대변수로 미국 등 선진국 경기의 회복여부와 함께 지방선거 및 대통령선거를 꼽고 있다. 재계는 지난해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기업규제 완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실제로 기업들의 피부에 와닿는 성과는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제의 경우 정부가 4월 도입방침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 일부 수정됐지만 여전히 투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 오히려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금지 등의 적용대상을 기존의 30대그룹에서 자산 2조원 이상으로 늘려 규제가 강화된 측면이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재계는 정부와 노동계가 주5일 근무제를 기정 사실화하는데 대해서도 “한국 기업현실에서는 시기상조”라는 논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또 기업의 회생과 퇴출이 신속하게 결정될 수 있도록 화의법 회사정리법 파산법 등 도산3법을 조속히 정비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경제정책의 핵심테마로 설정했지만 현정부 들어 1000여건의 규제가 신설되고 500여건은 오히려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는 최근 들어 정부가 여성인력의 고용 확대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여성 인력의 활용도를 높여야 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당연하지만 기업들의 수용 태세와 여성인력의 숙련성 등 현실 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기간에 밀어붙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다른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밀리지 않기 위해 서서히 목청을 높일 태세다. 최근 손길승(孫吉丞) SK 회장이 공개적이고 투명한 조건을 전제로 정치자금 제공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재계 차원의 요구를 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치자금 제공요구를 슬기롭게 거절하면서 경제 안정기조가 흔들리지 않는지 주시해야 하니 이래저래 선거는 기업에 피곤한 이벤트”라면서 “‘표’를 의식한 무리한 정치논리로 경제가 흔들리면 ‘표’를 던진 사람이 더욱 빈곤에 빠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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