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각료회의 타결진통]'힘빠진 미국' 조정자역할 못해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8시 31분


막판 조율-미무역대표부(USTR) 로버트 졸릭 대표(왼쪽)
막판 조율-미무역대표부(USTR) 로버트 졸릭 대표(왼쪽)
뉴라운드 출범을 위한 제4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일정을 하루 연장하면서까지 막판 타결을 시도했으나 결렬로 끝날 가능성마저 나타나고 있다. 각국이 14일까지 의견 조율에 나서고 있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제3차 각료회의에 이어 도하 각료회의까지 뉴라운드 출범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 뉴라운드 논의는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외견상 뉴라운드 출범 논의를 계속한다는 모양새를 취한다 해도 향후 협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21세기 새로운 다자간 무역질서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쌍무간 논의와 지역주의를 부추길 소지가 다분하다. WTO 체제에 대해서도 회의(懷疑)가 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상이 난항과 진통으로 점철된 것은 유럽연합(EU)과 개발도상국의 강력한 반발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더 깊게 들여다보면 미국의 지도력 약화와 WTO 체제가 취하고 있는 만장일치제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EU는 농업부문의 수출보조금과 환경문제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14일 막후협상에서도 국제협상력이 뛰어난 프랑스가 “수정 초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자 다른 EU 회원국도 대부분 이에 동조했다. 15개 EU 회원국은 WTO협상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게 돼 있다.

EU가 환경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는 뉴라운드 출범을 위해 다른 부문에서 대폭 양보를 했는데도 자신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다른 회원국이 수용하지 않자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 최대의 농산물 수출국인 프랑스는 농산물 수출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 강경개도국들은 WTO협정 이행문제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관심사항인 섬유 부문에서 미국 등 선진국이 수용하는 시늉만 하고 이행 일정표를 늦춰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최빈국들은 경제개발에 대한 지원 약속이 적은데다 회의가 선진국 주도로 이뤄져 투명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뉴라운드 출범에 반발했다.

이같은 각국의 엇갈리는 이해를 조정해 온 미국은 약화된 지도력 탓으로 과거와 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과거에는 EU와 개도국이 끝까지 미국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분위기였으나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미국이 국제기구에서 종종 따돌림을 당하고 기후변화협약 체결에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는 등 고립 조짐이 나타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대목이다.

더구나 WTO는 만장일치제를 채택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국가 수가 많은 개도국이 반발할 경우 실질적인 이득을 주지 않고는 이들 국가를 달랠 수 있는 카드가 없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다음 협상 때부터는 중국이 새로운 맹주로 등장할 것이 확실하므로 만장일치제를 택하는 다자간협상에서 합의를 도출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신연수기자·도하(카타르)〓김상철기자>yckim@donga.com

▼"또 결렬되는것 아니냐" 회담장 긴장▼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제4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일정을 하루 늦추며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는 카타르 도하의 셰러턴워커힐 호텔에서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99년 시애틀 각료회의의 실패가 이번에도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 이번 협상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인 농산물 수출보조금 문제는 시애틀회의 때도 최종 선언문의 탄생을 가로막은 주요 원인이었다.

이 문제에 강하게 집착하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유아르 무역장관은 “농산물 수출보조금 폐지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협상을 결렬시키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하회의는 개도국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국제회의다. 개도국들은 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세를 바탕으로 지적재산권-공중보건 안건에서 선진국들을 강하게 밀어붙였으며 이행문제 해결에 있어서 강경하게 밀어붙여 선진국 진영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인도가 중심이 된 개도국들은 기존 6개 쟁점 분야를 다루는 소그룹 외에 나머지 쟁점들도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워 기타 의제를 다루는 7번째 소그룹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WTO 각료회의에 참가한 한국대표단은 하루 2∼3시간도 못 자는 강행군을 계속. 대표단은 매일 새벽까지 열리는 주요국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본부에 전문을 보내고 오전 6시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초인적인 행군을 했다.

밤 11시에는 숙소인 라마다호텔 222호실에서는 한국 대표단의 심야 전체회의가 이어졌으며 폐막예정일이던 13일 밤부터 일정을 하루 연장한 14일까지는 온통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대표단의 한 간부는 “각료회의장인 셰러턴호텔은 현대건설이 82년 초 우여곡절 끝에 완공한 도하 최고의 호텔이어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지만 그런 걸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고 토로.

<도하(카타르)〓김상철기자>sc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